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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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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차이잉원 도피설까지...중국발 가짜뉴스 대만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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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시민단체 분석 보고서

조선일보

올해 1월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민진당의 라이칭더 당선자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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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총통(대통령) 선거를 치른 대만에서 지난 3년 동안 우방인 미국을 깎아내리고, 친미(親美) 성향인 집권 여당 민진당을 공격하는 조작된 정보들이 대거 유통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짜 뉴스’는 중국 관영 매체들이 대부분을 최초로 보도했고, 이후 대만 국민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로 옮겨져 ‘인터넷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거쳐 확산했다. 총통 선거는 친미·독립 성향인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했지만, 친중(親中) 성향 정치인들이 조작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슈 몰이를 하며 여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대만 시민 단체인 정보환경연구센터(IORG)가 16일 본지에 제공한 자료를 보면, 2021년부터 3년 동안 발생한 12개 주요 사건과 관련해 84개의 반미(反美) 성향 스토리가 온라인으로 퍼졌다. IORG는 중국 매체 1300여 곳, 소셜미디어 계정 500만개, 페이스북 페이지 120만개 등을 분석해 정보의 유통 경로를 추적했다. 지난 8일 워싱턴 DC에서 만난 유 치하오 디렉터는 “선거를 앞두고 미국에 대한 ‘대안적 세계관’을 형성하려는 중국의 정보 조작이 꾸준히 있었다”며 “(이런 조작은) 대만에 그치지 않고 미국·캐나다 등 세계의 중국 관련 커뮤니티도 대상으로 한다”고 했다. 2019년 설립된 IORG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술 등을 활용해 매일 중국어권 매체와 소셜미디어에서 쏟아지는 1200만개 이상의 텍스트를 분석·처리하고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 DC를 찾아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허드슨연구소 등에서 ‘중국의 선거 개입’을 주제로 강연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조작된 정보 중 상당수는 중국 관영 매체나 중국 지도부·공산당 지원을 받는 것으로 의심이 되는 매체들이 출처였다. 예를 들어 2021년 6월 미 의원 세 명을 태운 공군 대형 수송기이자 특수 작전기인 ‘C-17′이 대만에 착륙하자 중국 국방부가 “불장난을 멈추라”며 반발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푸젠 르바오’란 중국 매체가 “(민진당 소속 총통인) 차이잉원이 유사시 미국 수송기를 타고 도피할 계획을 세워놨다”고 보도했다. 거짓된 내용이다. 하지만 이를 인용해 3개월 동안 중국 매체들이 22차례 보도를 했고 대만 소셜미디어도 시끄러워졌다. 온라인 공간에 그치지 않고 이후 친중 성향인 국민당 부통령 후보 등이 이를 근거로 “민진당은 전쟁이 나면 도망갈 것”이란 구호를 앞세웠다. IORG는 “정당한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미국과 여당에 대한 조작된 정보가 공론의 질을 저하시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고 했다.

2022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굴지의 대만 반도체 기업인 TSMC의 애리조나 공장에 방문했을 땐 이를 미국의 ‘탈출 작전’으로 비유한 것도 친중 조작 세력의 ‘작품’이었다. 아울러 낸시 펠로시(민주당), 케빈 매카시(공화당) 전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서는 “미국이 대만의 우크라이나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비슷한 과정을 거쳐 퍼졌다. “미국산 돼지고기가 안전하지 않고, 미국 정부가 이를 대만으로 몰래 빼돌리고 있다”는 ‘가짜 뉴스’도 한 홍콩 신문사의 보도에서 시작해 확산했다. IORG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같이 미국에 좋지 않은 뉴스나 양안(중국과 대만) 긴장을 고조시키는 사건이 있을 땐 반미 내러티브가 언급되는 횟수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중국 매체들은 ‘확성기’ 역할을 했다. 2022년 9월 대만의 ‘스톰 미디어’란 매체는 명확한 출처 없이 “차이잉원이 유사시 측근들만 대만을 탈출할 수 있도록 ‘VIP 패스’를 발급했다”고 전했다. 대만 정부가 이를 공식 부인했지만, 일주일 뒤 중국 매체 20여 곳이 이를 뒤따라 보도했고 대만 소셜미디어에 번지며 논란이 확산됐다고 한다.

IORG는 이 과정에서 동영상 기반 글로벌 플랫폼인 ‘틱톡’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팔로어가 2만여 명인 한 틱톡 계정은 다섯 개 중국 매체가 중국 소셜미디어 ‘더우인’ 계정에 올린 영상 106개를 가공하지 않은 채 그대로 가져다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틱톡에선 중국 매체 보도인지 알아볼 수 없어, 일반 게시물처럼 공유됐다. IORG는 “똑같은 내용이라고 해도 틱톡에선 조회 수가 최대 50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중국 입장에선 틱톡에서 ‘대리인’ 계정들을 양산해 자국에 유리한 콘텐츠를 유포시키는 게 효과적인 전략이라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미 의회에선 틱톡의 모기업이 중국계인 바이트댄스란 점을 문제 삼아 지분 매각을 강제하는 ‘틱톡 금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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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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