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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산업안전 대진단’에 현장이 시끄러운 이유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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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월29일 오전 중소영세기업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관련 사업장 순회로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음식점을 방문해 숯가마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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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섭 |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



요즘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산업안전 대진단에 온 행정력을 쏟고 있다. 산업안전 대진단은 영세기업에 대한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마련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에서 밝힌 핵심 사업이다. 50인 미만 기업이 안전보건 경영방침·목표, 인력·예산 등 10개의 항목을 스스로 평가토록 하여, 사업주의 안전인식을 개선하는 동시에 컨설팅, 교육, 재정 지원 등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는 불만의 소리가 많다.



사무직만 있는 사업장의 사업주는 왜 ‘대진단’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평가 방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예를 들어 “귀사에서는 안전보건 조직 또는 업무 담당자를 정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고 있나요?”라는 항목에서 사무직만 있는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담당자가 필요치 않고 실제 법령상 의무도 없다. 재발 방지 대책의 수립 여부도 마찬가지다. 사고가 없었다면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전혀 그렇지 않다’를 선택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고, 점수는 5점 척도 중 최하점 1점이 된다. 선택지에 ‘해당 없음’이 없기 때문이다.



추진 기관과 담당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사업이 내실보다 보여주기 위한 실적 위주로 흐르고 있고 이를 위해 행정력을 추가 투입해야 하는 게 문제다.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평가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행 실적이 비교되는 현실에서는 안내와 홍보, 참여 독려, 실적 취합 및 보고 등 다른 예방 사업에 배치된 자원을 빼내서 투입해야 한다.



왜곡된 진단은 그 결과의 활용에 있어서도 잘못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위험요소가 없어서 진단 필요성조차 없는데도 부적절한 평가방법 때문에 불량 사업장으로 분류된 사업주는 분통이 터지고 행정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진단 결과가 교육, 컨설팅 등 행정 지원의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자원 투입으로 이어지게 된다.



대진단 자체가 사업주의 관심을 유도한다는 취지를 언뜻 이해하면서도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중대재해법의 확대 시행이 온 세상의 이슈가 된 지 오래인 터라 어지간한 사업장에서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있다. 영세기업이 정부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캠페인성 사업이 아니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정에서 실질적 도움이 되는 기술적, 재정적 지원이다.



83만개가 넘는 사업장을 한정된 자원으로 다 지원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지원이 꼭 필요한 곳에 선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업종별로 적용 여부를 판단하고 사업장의 작업 조건, 근로 형태, 장비·시설에 따른 위험요소가 선별 기준에 포함되도록 하는 사업설계가 필요하다. 소는 소 우리로, 양은 양 우리로 몰아야 하고, 어떤 소나 양에게 치료가 필요한지를 가리는 진단에는 왜곡이 없어야 한다. 해당 있는 곳에 해당 있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 효율 행정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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