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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원불교 나상호 교정원장 "신앙 생활의 본질은 감사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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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물음을 가진 한 청년이 있었다. 20년 넘게 수도한 끝에 마침내 답을 찾았다. 1916년 4월 28일, 그는 진리의 자리를 뚫고서 이렇게 외쳤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청년의 이름은 박중빈(1891~1943). 원불교를 창교한 소태산(少太山) 대종사다. 소태산은 전남 영광에서 출발해 변산을 거쳐 전북 익산에 원불교의 터전을 잡았다. 올해가 익산에 원불교 총부가 들어선 지 꼬박 100주년이다.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고 원불교를 연 날)을 앞두고 15일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행정수반인 나상호(63) 교정원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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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나상호 교정원장은 "원불교는 창립자가 태어난 날이 아니라 깨달은 날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익산=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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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대각개교절은 원불교 최대 절기다. 무엇을 크게 깨친(大覺) 건가.

A : “진리를 깨달았다. 그런데 그 진리가 당신만의 소유라고 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다 깨달아서 소유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의 중심에 당신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 중심에 설 수 있다고 했다.”

나 교정원장은 그걸 “깨달음의 개벽(開闢)”이라고 표현했다.

Q : 그게 왜 ‘깨달음의 개벽’인가.

A : “나는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에 대한 개벽적 시각을 열어주었다고 본다. 당시 누군가 물었다. ‘당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도 됩니까?’ 소태산의 답은 단호했다. ‘나를 절대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마라.’ 그 말에는 진정한 신앙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Q : 진정한 신앙의 대상, 그게 무엇인가.

A : “진리 그 자체다. 원불교는 그걸 ‘법신불(法身佛)’이라 부른다. 이 우주의 근원이다. 또한 우리 각자 안에도 내재해 있다. 소태산 대종사를 찾아온 한 사람이 물었다. 왜 불상(佛像)이 보이지 않느냐고 했다. 소태산은 기다려보라고 했다. 점심때가 되자 논밭에서 일하던 제자들이 돌아왔다. 소태산은 그들을 가리키며 ‘저들이 우리 집 부처님이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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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의 봉래정사에서 소태산 대종사(가운데)와 시봉진이 함께 있다. 원불교 교단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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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원불교에서 동선(동안거)을 할 때 처음으로 단체 법복을 착용한 모습. [사진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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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소태산 대종사(뒷줄 가운데 흰모자 쓴 키 큰 사람)가 전주 다가공원에서 제자들과 함께 있다. [사진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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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서 만난 나상호 교정원장은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깨달음의 표어를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익산=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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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교정원장은 여기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마음이 있다. 또 하나는 이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부처의 모습을 찾아라. 그래서 대종사께서는 내 주변의 사람들, 즉 살아 있는 부처에게 불공(佛供)을 드리라고 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깨달음을 얻고서 세상을 향해 표어를 하나 내놓았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Q : 갈수록 물질만능의 세상이다. AI(인공지능) 혁명까지 가세해 물질개벽이 더욱 실감난다. 우리에게 왜 정신개벽이 필요한가.

A : “사람이 물욕에 빠지면 물질의 지배를 받게 된다. 명예욕이나 권력욕도 물질의 연장선이다. 우리의 삶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선 곤란하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는 그걸 넘어서는 힘을 기르라고 했다. 그게 정신개벽이다. 그러니 개벽은 하늘이 중심이 아니고 사람이 중심이다.

Q : 정신개벽,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나.

A : “하나는 수행이다. 요즘 말로 하면 마음공부다. 또 하나는 신앙이다. 쉽게 말하면 감사하는 생활이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서 은혜를 발견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일. 그게 원불교가 말하는 신앙생활이다. 창밖을 보라. 4월의 신록이 푸르지 않나. 저런 나무가 없으면 지구가 살 수 있나. 인간이 살 수 있나. 그런 식으로 주위를 돌아보면 감사함 투성이다.”

Q : 그렇게 감사하면 무엇이 달라지나.

A : “고마움을 알면 상대를 존중하게 된다. 그럼 상대도 나를 존중한다. 내 주위에 상생(相生)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그럼 사람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의 삶이 달라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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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호 교정원장은 "원망하는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릴 줄 알면 죄와 복을 임의로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익산=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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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출가 후 지금까지 가슴에 꽂고 사는 한 마디가 있나.

A : “있다.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고,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고, 죄복(罪福)의 이치를 알아서 나의 죄복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얻도록 적공(積功)하자.’ 소태산 대종사의 법문에 있는 말이다. 매일 아침 5시, 기도와 명상을 할 때 이 구절을 새긴다.”

Q : 죄와 복은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걸 어떻게 내 힘으로 다루나.

A : “내가 앙갚음할 차례다. 갚으면 어찌 되나. 상대방이 또 앙갚음하게 된다. 윤회의 수레바퀴가 쉬지 않는다. 만약 내가 갚을 차례에 참으면 어찌 되나. 그 업이 쉬게 된다. 윤회의 바퀴가 멈춘다. 그럼 죄가 쉬고 복이 온다. 그러니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릴 수 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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