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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김준형의 '청맹과니'] 도마뱀이 되어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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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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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뇌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 '뇌간', '변연계', '대뇌피질'이 그것이다. 뇌의 가장 안쪽에는 뇌간이 위치한다. 뇌간은 혈압, 맥박 등을 관장한다. 파충류도 뇌간은 가지고 있다. 뇌간의 바깥쪽으로는 변연계가 있다. 변연계는 감정, 느낌 등을 관장한다. 파충류보다 좀 더 진화된 포유류부터 변연계가 있다. 그리고 뇌의 가장 바깥쪽이 대뇌피질이다. 이 부분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부분이다. 대뇌피질은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진화된 영장류들만 가지고 있다. 이렇듯 세부분은 고유한 기능이 있고, 상황에 따라서 주도권이 바뀐다. 공부를 할 때는 대뇌피질이 주도권을 쥐지만, 싸울 때는 뇌간이 주도권을 쥔다. 싸울 때는 혈압을 높이고, 맥박을 빠르게 하여, 혈액을 온몸 근육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움이 시작되면 이성적인 설득이 힘들고, 사람도 도마뱀처럼 되어 버린다.

얼마 전, 어느 고객이 카페 사장을 무릎 꿇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객 A씨는 카페에서 음료를 배달 주문했는데, 실수로 빨대가 빠졌다. A씨는 다시 빨대를 보내달라고 했고, 사장은 사과의미로 빨대와 케이크를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소를 잘못 받아 적는 바람에 배달이 지체 되었다. A씨는 카페를 찾아와 강하게 항의 했다. 사장이 '어떻게 하면 되겠나?'라고 묻자, A씨는 '무릎이라도 꿇어라.'고 했고, 사장은 무릎을 꿇었다. A씨는 '넌 무릎 꿇는 게 그렇게 편하냐?'고 하더니, '다시는 그따위로 장사하지 말라. 이 동네에서 살아남을 거 같냐?'고 소리치며 카페를 떠났다. 이후 A씨는 '빨대를 다시 가져다준다는 사장의 태도가 불손했다. 빨리 죄송하다고 했으면 무릎까지 꿇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방송사에서 공개한 영상을 보면 A씨는 마치 싸울 듯이 흥분해 있었다. 뇌간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반면 사장은 싸울 수가 없었다.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억울했겠지만 사장은 무릎을 꿇었다. 사장은 대뇌피질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빨대 하나를 가져오기 위해서,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것이 합리적일까? 빨대 없이 마실 수 없었을까? 근처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빨대를 얻을 수 없었을까? 그리고 사장을 무릎 꿇려야만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그러나 뇌간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점이 생기게 된다.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방법'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상대를 무릎 꿇리는 것은 가장 질이 낮은 방법이고, 도마뱀의 방식이다. 도마뱀의 방식은 또 다른 적을 만들고, 새로운 갈등을 야기 시킨다. 그리고 이런 풍조가 계속되면, 대뇌피질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사람도 결국 싸움에 나서야 한다. 이성적인 사람들만 끊임없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삼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현재의 우리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도마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느끼지 못 한 채, 서서히 도마뱀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반성하고 고민해 보아야 할 부분일 것이다.

김준형 / 칼럼니스트(우리마음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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