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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프랑스 떠나려는 무슬림들…"공화국 믿었지만 내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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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받은 무슬림 실망·회의…"프랑스, 인재 잃고 있다" 비판

연합뉴스

'무슬림은 희생양이 아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 내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불신이 누적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된 계층의 무슬림이 점점 더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고 일간 르몽드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발발 이후 무슬림에 대한 적대가 커지자 이들 사이에 프랑스 사회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르도 출신의 투자은행가이자 명문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하룬(52·가명)씨는 현재 영어권 국가로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과 그해 11월 파리 연쇄 테러 이후 무슬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점점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노력을 기울이든,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든, 우리는 우리의 출신과 종교적 정체성에 묶여 있고 이 때문에 경력을 쌓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또 "어렸을 땐 우리가 피해를 본다는 친구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공화국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걸 제공한다고 확신했지만 이제는 그 친구들의 주장에 100% 동의한다"며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마땅히 누려야 할 삶과 직업을 위해 프랑스를 떠나라고 독려한다고 말했다.

올해 39세인 사미르(가명)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회학 석사 학위를 따고 프랑스 북부 지방의 공무원으로 15년 근무했다.

사미르씨는 "공화국의 성공을 믿었지만 내가 틀렸다"며 "우리(무슬림)가 교외 변두리에 살면 사람들은 우리가 사고나 친다고 생각하고 변두리를 떠나면 공화국에 '침입'하려 한다고 의심받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무엇을 하든 난 아랍인이자 무슬림일 뿐"이라며 "지난해 10월7일 이후로는 말도 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반유대주의자'라는 수식어가 추가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불필요한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종교·문화적 신념을 숨긴다고 했다.

하룬씨는 이슬람 금식 성월 라마단에 동료들과 함께 식당에 가 전채를 시켜놓고 먹는 시늉을 했다고 고백했다.

사미르씨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은 아내 사진을 남들에게 보여줘야만 했다"며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상상도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르본누벨 대학교의 연구·강의 교원이자 이맘(이슬람 예배 인도자)인 압델가니 베날리씨는 "이슬람의 땅으로 돌아가는 헤지라를 위해 떠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차별과 유리 천장에 직면해 고통 속에 프랑스를 떠나고자 하는 중견·고위급 무슬림 관리자의 조용한 이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인 무슬림의 디아스포라에 관한 책을 공동 집필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줄리앙 탈팽 연구원은 "이 현상의 규모를 수치화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수천, 어쩌면 수만 명이 프랑스를 떠난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서 집필을 위해 조사한 이들 중 50%가 최소 5년 이상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이들 모두 프랑스를 떠났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도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인구의 약 10%(600만명)을 차지한다.

지역 공무원이자 사회 활동가인 유세프(62·가명)씨는 "사람들은 이슬람 급진주의 기류에 대해선 귀를 기울이면서도 우리가 말하는 이슬람 혐오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며 "프랑스는 그동안 양성한 많은 인재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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