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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기억할 오늘] 저항-자유의 깃발로 살다 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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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바이런의 마지막 시
한국일보

그리스 메솔롱기의 해변 공원 '영웅의 정원'에 선 조지 고든 바이런의 동상. 동상 아래에 그의 심장이 묻혔다고 한다. flickr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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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고든 바이런(1788.1.22~1824.4.19)이 1824년 1월, 어린 연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리스 독립전쟁 의용군으로서 지중해를 건넜다. “영혼의 고향”으로 여기던 그리스를 여행한 뒤 연작 시집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1812)’로 그리스 여행 붐을 일으키고, 그 덕에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던 그였다. 오스만제국(튀르키예)의 400년 핍박에서 서구문명의 고향을 구하자는 대의로 그는 군자금을 모았고 그 돈으로 멋진 범선 ‘헤라클레스’를 빌린 터였다.

바이런은 전장이던 그리스 서부 메솔롱기(Messolonghi)에서 36세 생일을 맞이했고, 그날 자신의 마지막 시 ‘오늘 나는 36세가 되었다(On This Day I Complete My Thirty-Sixth Year)’를 썼다.

“이제 내 심장은 멎어야 하네./ 더는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하지 못하니/ 다만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사랑하게 해주길!” 후기낭만파의 대표시인답게 그는 자유와 저항의 전장에서도 잃어버린 사랑을 (자기)연민하며 새로운 사랑을 꿈꾸었다. “칼과 깃발, 그리고 전장/ 보이는가! 영광과 그리스가 여기 있다/ 방패를 들었던 스파르타인들도/ 우리보단 자유롭지 않았다/ 깨어라(그리스는 이미 깨어 있다)/ 깨어라 내 영혼이여! 그리고 생각하라/ 네게 생명의 피를 준 어버이 호수를/ 그리고 나아가라!(…) 네 젊음을 후회한다면, 왜 사는가?/ 영예로운 죽음의 땅이/ 여기 있네- 전장에 서서/ 마지막 숨을 풀어 놓아라!”

좋게 보아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달리 보면 희대의 난봉꾼이었던 그는 그리스 민족주의 진영의 분열과 관료주의에 묶여 제대로 전투조차 못 했지만,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전사들의 깃발로 내어주고 불과 석 달 뒤 폐렴으로 숨졌다. 그의 유해는 고국으로 송환됐지만, 심장은 남아 메솔롱기의 해안가 ‘영웅의 정원’에 선 자신의 동상 아래 묻혔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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