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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책&생각] 책은 읽고, 술은 익고, 사람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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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책, 익다의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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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혼자 책 읽으면서 술 마시는 공간은 없을까?’ 홍대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술 마시는 책방 ‘책, 익다’입니다. 혼자 있고 싶지만 홀로 있고 싶지는 않은 분들을 위한 책방을 만들고 싶었는데, 코로나가 그 시기를 앞당기게 했어요. 2021년 1월,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잠시 떨어질 수 있는 공간을 열었어요.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과 잘 숙성된 술에서 좋은 향이 나듯, 책방에 머무는 손님들도 잘 익어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 익다’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알고리즘에 쫓겨 양극단으로 밀리고, 공동체가 깨어져 가는 고독의 시대에 조연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었어요. 거리 두기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딱히 그럴 만한 공간은 많지 않았으니까요.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아늑한 책방을 만들고 싶었어요. 원목의 인테리어와 그윽한 조명이 한몫했나 봐요. 실제로 방문하신 분들이 남기신 쪽지에서 ‘나만 알고 싶은 공간, 나만의 아지트’라고 할 때 내심 기뻐요. 주변에 소개도 많이 해주시면 더 좋으련만….



‘책, 익다’에는 총 18석이 있어요. 각자 가져온 책이나, 서가에 있는 책을 구입해서 읽기도 해요. 물론 본인의 취향에 맞는 술 한잔을 곁들여서요. 향긋한 레드 와인이나, 씁쓸하고 싶었는지 마티니를 주문하기도 해요. 달달한 시간을 위해 얼그레이 하이볼을 드시는 분도 있고요. 방문한 분들의 책과 술 취향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배려심이 넘쳐요. 발자국 소리도 안 나게 다녀요. 정말 조용해요.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려요. 시끄럽고 번잡한 홍대에서 이토록 조용한 공간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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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책방 ‘책, 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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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다’의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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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 위주로 큐레이션하고 있어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런 걸까?’라는 의문이 계속되어, 경영학을 전공하다 심리학까지 공부하게 됐거든요. 주로 에세이, 심리, 소설, 시 등 사람 사는 이야기와 마음을 담은 책이 많고, 한쪽에는 가까운 지인이 썼을지도 모르는 독립출판물도 있어요.



‘책, 익다’는 혼자 방문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책을 읽기도 하지만, ‘날적이’를 보면서 다른 사람이 남긴 마음에 코멘트를 달기도 하고, 어디에도 남기지 못했던 본인의 속마음을 끄적여 놓기도 해요. 시간을 뛰어넘어,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타인과 소통하며 위로를 주고받는 ‘날적이’는 어느새 ‘책, 익다’의 보물이 되었답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글쓰기 모임을 3년째 열고 있어요. 글쓰기를 통해 자신과 가까워졌다는 분들의 피드백에 힘을 얻어 계속 열고 있어요. 그 외에도 독서, 영화, 와인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수시로 진행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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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술을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고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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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술과 책이 함께 있는 ‘책, 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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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술을 마시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생각보다 많아요. 듣고 보니 그래요. 책을 읽을 때는 왠지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거나,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될 것 같다는 고정관념이 은연중에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이유로 독서 인구가 줄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어요. 아직 음주 독서를 경험해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집에서 한번 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적당한 술은 몰입감을 높여주기도 하거든요.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처럼요. 좋아하는 술 한잔을 마시면서 책을 읽어보면, 의외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거예요.



오래도록 사춘기 어른들을 위한 책방이고 싶어요. 이 세상에 책이 존재하는 한, 언제 찾아가도 그 느낌 그대로인 아지트 같이요.



글·사진 전유겸 책, 익다 책방지기





책, 익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29마길 10-3 2층



instagram.com/book.ik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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