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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32] 토스카나의 평원 발도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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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발도르차(Val d’Orcia)’의 빈틈없이 자란 녹색 풀의 초원, 포도밭을 가르며 구불거리는 시골길, 그리고 사이프러스 가로수의 끝자락에 등장하는 농가는 이탈리아의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박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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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이 자란 녹색 풀의 초원, 포도밭 사이로 구불거리는 시골길, 그리고 사이프러스 가로수의 끝자락에 등장하는 농가는 이탈리아의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이곳은 시에나 남부에서 움브리아주의 경계 ‘발도르차(Val d’Orcia)’라고 부르는 평원이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찾아오고, 수많은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했으며, ‘잉글리시 페이션트’ ‘글래디에이터’ 같은 영화에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탁 트인 경관에 펼쳐진 장대함과 나무들의 미적 배치는 그야말로 숨 막히는 감동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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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차(Val d’Orcia)’ 지역에서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는 몬테풀치아노의 와인 ‘노빌레(Nobile di Montepulciano)’와 몬탈치노 마을의 ‘브루넬로(Brunello di Montalcino)’가 생산된다. /박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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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역사는 깊다. 과거 로마 시대, 이탈리아 북부를 거쳐 프랑스로 이르는 길목이었고, 11·12세기 중세에는 방어 목적으로 언덕마다 마을을 꾸몄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건 르네상스 시대다. 13·14세기에 부흥했던 시에나의 상인들은 농사에도 관심을 가져 도심 주변 땅을 비옥한 농지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단지 식량 수확이라는 기능을 넘어 경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노력을 기울이며 ‘미적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건축, 예술뿐 아니라 도로 등 공공 시설 건립과 보존에도 재정적 기부를 하여, 오늘날까지 잘 정돈되고 깨끗한 경관을 보존하는 기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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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차(Val d’Orcia)’ 지역의 힐 타운. 11,12세기의 중세에 방어 목적으로 언덕위에 형성되었다. /박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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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에서 꼭 맛보아야 할 음식이라면 토종 돼지 신타 세네세(Cinta Senese)로 만든 프로슈토, 살라미, 모타델라 같은 가공육과, 양의 젖으로 만든 페코리노(Pecorino) 치즈다. 그리고 무엇보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는 몬테풀차노의 와인 ‘노빌레(Nobile di Montepulciano)’와 몬탈치노 마을의 ‘브루넬로(Brunello di Montalcino)’가 있다. 웬만한 레스토랑에서 적당한 가격에 다양하게 시음할 수 있는 것도 현지 방문의 특권이다.

‘발도르차’는 2004년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땅의 경제적 가치 못지않게 “미적 경관을 완성하고 유지하는 모범적인 예”라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자연이 내려준 아름다운 환경이지만, 이를 지키고 아름답게 꾸미고자 한 인간의 노력이 반영된 유산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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