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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반칙왕' 된 베이징 영웅… 태극마크 내려놓다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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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자 쇼트트랙 황대헌

편집자주

최근 가장 '핫'한 스포츠 이슈를 찾아 주요 인물의 스포츠 인생을 정리해보는 코너입니다. 프로 무대의 스타플레이어를 비롯해 아마추어 '신성', 지도자, 체육단체장 등 하루하루 숨가쁘게 변화하는 스포츠 세상 속에 사는 인물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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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헌이 12일 서울 목동빙상장에서 열린 2024~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2차 선발전 남자부 1,000m 준준결선에서 레이스를 마친 뒤 상대 선수의 반칙 여부에 대해 어필하고 있다. 황대헌은 선발전 종합 랭킹 포인트에서 상위 8위 안에 들지 못해 차기 시즌 태극마크를 내려놓게 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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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간판이었던 황대헌(강원도청)이 지난 12일 끝난 차기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2023~24시즌 국제대회에서 대표팀 동료 박지원(서울시청)에게 반복적인 반칙을 저질러 ‘팀킬 논란’에 휩싸였던 황대헌은 “고의성이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팬들의 비판 목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박지원을 찾아가 직접 사과하겠다는 의사도 내비쳤으나 박지원의 반응은 냉랭했다.

부정적인 여론 속에 국내 팬들 앞에서 선발전을 치른 그는 여전히 플레이가 거칠었다. 1차 선발전 1,000m, 2차 선발전 500m에서도 반칙 판정을 받았고, 실격 처리되자 관중의 환호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랭킹포인트 상위 8위 안에 들지 못해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됐다. 이로 인해 2024~25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와 세계선수권대회,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출전이 불발됐다. 한때 한국 쇼트트랙의 영웅으로 국민적인 응원을 받았던 간판 스타의 추락이다.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시련의 계절을 맞은 황대헌의 파란만장한 쇼트트랙 인생을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에서 훑었다.

평창 기대주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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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부터 기대주로 꼽혔던 황대헌.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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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에 스케이트를 처음 탄 황대헌은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과 고인이 된 노진규를 롤모델 삼아 국가대표 꿈을 키웠다. 워낙 활동적이었던 성격이라 시원시원하게 질주할 수 있는 스케이트 재미에 푹 빠졌다. 안양 안일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의 꿈’을 그려오라는 숙제에 ‘나의 꿈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열심히 연습’이라고 적을 정도로 일찌감치 강한 열망을 보였다.

재능은 타고 났다. 출전하는 전국 대회마다 금메달을 휩쓸었다. 주니어 국가대표로도 동계유스올림픽과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꿈에 그리던 시니어 국가대표는 2016년에 마침내 실현됐다. 2016~17시즌 월드컵 시리즈를 앞두고 국가대표 선발전에 뽑힌 3명이 불법도박 혐의로 기소돼 차순위였던 황대헌이 8명 엔트리에 들어갔다. 실력보다는 행운이 따른 태극마크였다.

황대헌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16~17시즌 2차 월드컵 1,000m 준준결선에서 1분20초875의 당시 세계신기록을 썼고, 6차 대회에선 1,000m 금메달을 따냈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황대헌은 2017년 4월 차기 시즌 대표 선발전에서 2위에 올라 운이 아닌 실력으로 당당히 국가대표가 됐다.

2017~18시즌은 황대헌의 독무대였다. 네 차례 월드컵에서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1,500m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차지하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건장한 체격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스피드가 강점으로, 한국에서 처음 펼쳐지는 동계올림픽 최고 기대주로 주목받는 순간이었다.

‘2전 3기’ 고교생 첫 올림픽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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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황대헌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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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10대 막내’ 황대헌의 첫 올림픽은 아찔했다. 남자 대표팀에서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월드컵 랭킹이 가장 높아 평창올림픽 개막 전 금메달 1순위로 꼽혔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지독한 불운에 시달렸다. 올림픽 첫 경기였던 1,500m 결선에서 넘어지며 눈앞에서 메달을 놓쳤다. 아쉬운 마음에 눈물까지 흘렸다. 세계기록을 보유한 두 번째 경기 1,000m에서는 대진운이 따르지 않았다. 팀 동료 서이라, 임효준과 함께 뛴 ‘지옥의 조’에서 실격당해 준결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두 번이나 좌절했지만 황대헌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1년 중에 그냥 흘러가는 하루였을 뿐”이라며 지난 일에 개의치 않고 남은 500m를 준비했다. 한국 쇼트트랙이 취약한 단거리 종목이지만 신체 조건이 좋고 폭발적인 스피드를 갖춰 충분히 메달을 노릴 만했다. 실제 황대헌은 중국 우다징에 이어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해 자신의 첫 올림픽 메달을 2전 3기 끝에 ‘은빛’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아쉬움은 숨길 수 없었다. 다만 4년 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는 만 23세의 나이로 한창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시기라 2022년을 진짜 승부처로 여겼다. 황대헌은 평창올림픽을 마친 뒤 “은메달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투톱이 앙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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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동료에서 앙숙이 된 임효준과 황대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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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헌은 평창올림픽 이후 남자 쇼트트랙을 ‘쌍끌이’했던 임효준과 완전히 돌아섰다. 2019년 6월 황대헌이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암벽 훈련 중 임효준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신고하면서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 문제로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단 전원이 선수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한 종목 팀 전체가 퇴출 조처를 받은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후 임효준 측은 “장난기 어린 행동이었지만 상대가 기분 나빴다면 분명 잘못한 일”이라며 “황대헌 선수에게 거듭 사과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황대헌 측은 “여자 선수들도 있는 자리에서 일이 벌어져 수치심이 크고 수면제를 복용하고 잘 정도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고 전했다.

대표팀 에이스였던 임효준은 후배 추행 사건으로 인해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다. 2020년 5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한국 대표로 뛸 수 있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그해 6월 중국 귀화를 결정했다. 긴 법정 싸움 끝에 임효준은 2021년 5월 대법원에서 강제 추행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받고 개인적으로 억울함을 풀었지만 중국명 린샤오쥔으로 빙판을 누비게 됐고, 둘은 동료에서 앙숙이 됐다.

편파 판정도 못 막은 금빛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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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헌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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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준이 떠난 뒤 남자 쇼트트랙은 황대헌 ‘원톱’ 체제로 2022 베이징 올림픽을 맞았다. 황대헌은 올림픽을 앞둔 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하며 금빛 전망을 밝혔다. 하지만 역시 올림픽은 변수가 많았다. 유력한 금메달 종목으로 꼽혔던 남자 1,000m에서 황대헌과 이준서가 각각 조 1, 2위로 준결선을 통과했지만 석연찮은 판정 탓에 실격을 당했다. 도를 넘는 개최국 중국의 편파 판정에 ‘눈 뜨고 코 베이징’이라는 비아냥이 나왔고, 국민적 분노도 커졌다.

황대헌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장애물을 마주했다고 반드시 멈춰 서야 하는 건 아니다. 벽에 부딪힌다고 돌아서거나 포기하지 말라. 어떻게 벽을 오를지, 뚫고 나갈지 또는 돌아갈지 생각하라’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명언을 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황대헌은 1,500m에서 분노의 질주를 펼쳤다. 중국 선수들이 아예 손을 쓰지 못하도록 9바퀴를 남기고 계속 치고 나가 개인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황대헌의 통쾌한 레이스에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SNS에 ‘존경한다’는 의미의 "RESPECT!"를 적었다. 동시에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금메달 쾌거 소식을 전하며 올림픽 영웅으로 떠오른 황대헌은 빙상연맹 회장사인 제네시스BBQ 그룹으로부터 60세까지 ‘1일 1닭’을 할 수 있는 치킨 연금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팀킬 논란 속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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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황대헌(오른쪽)과 박지원이 귀국장에서 등을 돌린 채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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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후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황대헌은 2년 새 180도 다른 처지가 됐다. 2023~24시즌 오해를 살 만한 반칙을 자주 범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새로운 강자 박지원에게 네 차례나 반칙을 해서 일부러 반칙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첫 충돌은 지난해 10월 월드컵 1차 대회 1,000m 2차 레이스 결선에서 발생했다. 당시 황대헌은 앞서 달리던 박지원을 뒤에서 밀치는 거친 반칙을 범해 옐로카드를 받고 그간 쌓아온 포인트를 몰수당했다. 차기 시즌 국가대표 자동 선발권이 걸린 지난달 세계선수권대회 1,500m와 1,000m 결선에서도 박지원을 손으로 밀쳐내는 노골적인 반칙을 감행해 두 종목 모두 페널티를 받았다.

대회 직후 황대헌은 “절대 고의로 그런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달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또 충돌이 일어났다. 지난 6일 1차 선발전 500m 준결선에서 황대헌은 박지원과 부딪쳤고, 박지원은 충돌 여파로 뒤로 밀려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에도 황대헌의 거친 플레이는 계속 이어졌다. 7일 1,000m 2차 예선에서 박노원과 충돌해 실격됐고, 11일 2차 선발전 500m 결선에서 박장혁에게 반칙해 페널티를 받았다. 고의성을 떠나 졸지에 ‘반칙왕’이 된 황대헌을 두고 일각에선 기술보다 힘으로 경기를 치르는 기존의 스케이팅 기술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개인은 물론 대표팀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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