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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대법 “검찰 진술분석관 피해자 면담 영상, 증거 인정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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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서초동 대법원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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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진술분석관이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와 면담 내용을 녹화한 영상녹화물은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첫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진술분석관이 녹화한 영상물도 수사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봐야 하며, 수사과정에서 작성된 자료가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엄격한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1일 미성년자인 딸을 성적·신체적·정신적으로 학대한 혐의 등으로 엄마 ㄱ씨에게 징역 8년, 의붓아빠 ㄴ씨에게 무죄, 엄마의 지인인 ㄷ씨와 ㄹ씨에게는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3년6개월 등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히며 이같은 판단을 내놨다.



쟁점은 대검찰청 소속 진술분석관이 피해자인 딸의 면담 내용을 녹화한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것인지였다. 성폭력처벌특례법에는 13살 미만의 피해자의 경우 수사기관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심리학자·사회복지학자·그 밖의 관련 전문가로부터 피해자의 정신·심리 상태에 대한 진단 소견 및 피해자의 진술 내용에 관한 의견을 조회하도록 되어있다.



검찰은 이같은 과정을 외부 전문가가 아닌 대검 진술분석관에게 맡겨 녹화한 영상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지만 이는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직접증거’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당시 상황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작성한 진술서 등 ‘전문증거’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전문증거와 관련해 형사소송법은 ‘수사과정에서 작성한 진술서’와 ‘수사과정 외에 작성한 진술서’를 구분한다. 그리고 둘 중 어느 경우인지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요건이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적법한 절차와 방식으로 작성된 조서 형식일 때만 인정되고, 후자의 경우 문자·사진·영상 등도 가능하다. 다만 두 경우 모두 재판에서 원진술자의 진술 등으로 그 증거가 진짜라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



검찰은 “대검찰청 소속 진술분석관은 검찰수사관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수사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수사과정 외에 작성한 진술서’에 대한 규정을 적용해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녹화영상물을 수사과정에서 한 진술로 판단했다. 진술분석관이 이 사건 수사를 직접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수사과정에서 진행된 면담인 만큼 수사과정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면 조서의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진술분석관의 소속 및 지위, 피해자와 면담을 하고 이 사건 영상녹화물을 제작한 경위와 목적, 면담 방식과 내용, 면담 장소 등을 살펴보면, 이 사건 영상녹화물은 수사과정 외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관련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서 증언했고 그 신빙성이 인정되면서 ㄱ씨 등의 혐의는 일부 유죄로 인정됐다.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의붓아빠 ㄴ씨에 대해서는 대법원은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1·2심은 ㄴ씨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이유로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대법원 역시 기존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수사과정에서의 진술에 관하여는 엄격한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며 “수사기관에서는 수사기관 소속이 아닌 관련 전문가에게 의견을 조회하는 방법으로 아동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으므로, 수사기관에서의 아동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무조건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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