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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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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은 ‘볼드모트 사료’…동물병원 100곳 고양이 피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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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3일 급성 신경·근육병증이 나타난 반려묘 ‘콜라’(10살)는 증상을 보인 지 이틀 만에 고개도 들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다. 현재는 증상이 나아져 통원 치료 중이다. 보호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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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반려묘 ‘콜라’가 갑자기 뒷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10살 콜라는 지금껏 잔병치레 없이 건강한 고양이였다. 보호자 박아무개(25)씨는 콜라가 다리를 삐었다고 생각해 하루 정도 지켜봤는데, 다음날이 되자 콜라는 옆으로 누워 고개도 들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급하게 찾은 병원에서 그는 최근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고양이 급성 신경·근육병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들었다. 박씨는 그제야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고양이들의 사례를 알게 됐고, 원인으로 지목된 이른바 ‘볼드모트 사료’를 급여해 온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반려묘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질환으로 숨지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특정 사료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와 ‘묘연’이 집계한 피해 사례는 21일 오후 8시 기준 163가구 263마리에 달하며 이 가운데 94마리가 죽었다.



2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라이프와 묘연 그리고 대한수의사회는 이번 고양이 급성 질환의 원인을 한 국내 제조원에서 올해 1~4월 생산한 사료로 보고 있다. 문제의 제조원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든 사료는 약 20여 종으로 알려져 있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고양이의 연령이나 품종과 상관없이 피해가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피해 가정의 공통점은 바로 사료였다”며 “사료가 원인이라는 것은 단순한 괴담이 아니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와 보호자들은 법적 분쟁 가능성 탓에 해당 사료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볼드모트(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악당) 사료’라고 부르며 고양이 커뮤니티 등에서 해당 제품의 리스트를 공유하고 있다.



지난 11일 관련 증상을 설명하며 보호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던 대한수의사회도 사료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서 대한수의사회는 원충성 질병(기생충이나 곰팡이균이 원인이 되는 질환)이 의심된다고 발표했으나 관련 사례들이 추가 접수되며 입장을 수정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은 이날 한겨레에 “전국 동물병원 100곳에서 피해 사례가 보고됐는데, 모두 문제의 사료를 급여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특정 사료를 언급하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럽다”면서도 “수의사단체에서 사료 성분 검사를 진행할 수는 없어서 외부 기관에 의뢰해 정확한 원인을 살펴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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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6시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피해 집계현황. 라이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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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현재까지 고양이 급성 질환과 사료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9일 ‘고양이 사망 관련 사료에 대한 중간 검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검사를 의뢰받은 사료 30여건 가운데 3건에 대해 유해물질, 바이러스, 기생충 검사를 한 결과 모두 음성(또는 적합, 불검출)으로 나타났다. 조사 필요성이 제기된 사료 제조업체 5곳도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방문해 제조 공정과 관련 서류를 살펴봤지만 특이 사항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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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사례가 여러 건 보고돼 국내 수의사회가 반려인들에게 관심과 주의를 당부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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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단체는 정부의 검사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유해물질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정부의 선제적 조처를 촉구했다. 심 대표는 “고양이 수백 마리가 피해를 보고 있지만, 정부는 어떠한 행정적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사료명을 밝히지 못하는 현 상황이 너무 답답하다”며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최종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유통금지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호자들도 정부의 중간 검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나응식 그레이스 고양이병원 원장(수의사)은 “고양이 커뮤니티 내에서는 이미 사료 문제라는 인식이 퍼져있다”며 “심리적 요인 때문에라도 (국내 제조원을 피하고) 글로벌 제조업체의 사료를 택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 중요한 것은 보호자가 관련 증상을 빠르게 인식하고 초기 치료에 나서는 것”이라며 “증상을 빨리 인지하고 치료를 시작하면 그만큼 좋은 예후를 보이고 있다”고 조언했다. 질병이 의심될 때는 먹이던 사료의 성분과 제조일 등을 사진으로 찍어서 동물병원에 제출하는 것이 (역학조사 등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문제의 사료 유통을 선제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반려산업동물의료팀 관계자는 “중간 검사 결과로 발표한 3종의 사료가 적합 판정을 받은 만큼 유통금지 등은 현재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추가로 검사를 의뢰받은 사료 30여 건의 성분 조사와 함께 시중에 유통되는 사료도 자체 수거해 ‘투 트랙’으로 검사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10~12일 고양이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고양이들이 갑자기 무기력증을 앓다가 몸을 일으키지 못하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증상으로 병원에 내원하는 사례가 여러 건 올라왔다. 고양이들은 식욕 저하, 기립 불능, 몸 떨림, 근색소뇨(근육 세포 파괴로 붉은 소변을 보는 것)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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