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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교수님 사직, 다른 병원 가세요" 안내문에 환자들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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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2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내원객이 의자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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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낸 지 한 달째에 접어들면서 이들이 실제 의료 현장을 떠나는 상황이 올 것인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교육 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학본부에 접수돼 사직서가 수리될 예정인 (의대 교수)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미 “사직서 제출을 결의했다”고 밝힌 대학·병원별 의대 교수가 적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지난달 25일 사직서를 낸 일부 의사들의 경우, 한 달이 되는 기점(4월 25일)에 사직 효력이 나타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민법(660조)상 ‘고용 기간 약정이 없는 근로자가 사직을 통고한 뒤 한 달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한다’는 조항에 근거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차관은 “일률적으로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사직서 제출 여부, 제출 날짜, 계약 형태는 상이하다”고 반박했다.

의대 및 병원별로 사직 의사를 표출한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혼선을 키우고 있다. 빅5 병원의 한 관계자는 “사직서를 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일부 의대·병원은 의대 학장이 교수들의 사직서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박 차관은 “사직서 수리를 위한 형식적 요건에서도 진행된 게 없어 25일에 당장 효력이 발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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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회의 내용 등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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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측은 의대 교수는 민법이 아닌 국가공무원법 적용 대상이라는 이유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의 경고는 이어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등이 수련병원인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대위는 22일 입장문을 내고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의 현명한 대승적 결단을 간곡히 호소한다”라며 “의대 증원 정책을 즉시 중지하고 의정 협의체를 구성하라”고 요청했다. 앞서 전국의대교수 비대위는 지난 19일 “적절한 정부 조치가 없다면 예정대로 이달 25일부터 교수 사직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 시스템이 회복 가능한 기간은 이번 주(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라는 경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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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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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아 신장이식 관련 한 환자 카페에서는 “교수님이 오는 8월 병원을 떠난다”며 걱정하는 글이 올라왔다. 환자들에게 배포됐다는 안내문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A·B교수는 “사직 희망일은 8월 31일이다. 믿을 수 있는 소아신장분과 전문의에게 환자분들 보내드리고자 하니 희망 병원을 결정해 알려달라”고 알렸다. A교수 진료실 앞에도 이런 게시글이 붙어있다고 한다. A교수와 B교수는“여러분 곁을 지키지 못해 대단히 죄송하다”라고도 했다. 환자 카페에서는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착잡하다”와 같은 반응이 나왔다.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지난 2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정부가 어떻게든 이번 달 안에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며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으로 더는 못 버티는 교수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최 교수도 ‘번아웃’ 등에 따라 다음 달 10일 진료를 정리할 방침을 세웠다. 최 교수는 “필수의료 중심으로 교수들이 자기 속도대로 사직을 준비하고 있다”라며 “교수의 사직 효력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대체가 안 되는 이들이 사직한다는 것에 정부는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은 26일부터 금요일 휴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들 비대위 측은 “2달간 교수들의 정신적·신체적 피로도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했다.

의대생의 휴학 승인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이 모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지난 21일 “현 사태가 지속된다면 학생 불이익 최소화를 위해 휴학을 승인할 수밖에 없다”는 ‘대국민 호소문’을 냈다.

최창민 전국의대교수 비대위원장(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22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의대생이 휴학하면 전공의도 돌아오지 않게 된다.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서라면 이번 달이 마지막”이라고 주장했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 여부에 대해서는 “개인적 결정에 맡겨둔 상황”이라면서도 “사직은 정부에 대한 (항의) 의사 표현이다. 이미 할 만큼 했고, 이제 의사들은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 단체가 모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생명과 직결된 필수중증의료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25일 이후에도 (교수들이) 부디 의료현장에 남아달라”고 호소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과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말기 암 환자 치료마저 중단되고 호스피스로 내몰리고 있다”며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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