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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정비사 공사비 1300만원 뚫었다…“계속 가? 말아?” 고민 깊어지는 조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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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은행주공, 시공사 계약 해지 결정
시공사와 법적다툼 벌어질 가능성↑
공사비 증액 합의도 잇달아
일반 분양가도 덩달아 치솟을 전망


매일경제

서울의 한 재건축 사업장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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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잿값 급등으로 정비사업 공사비가 치솟으면서 조합과 시공사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 지는 모습이다. 시공사 계약을 해지하거나 조합 집행부가 해임되는 등 사업이 멈춰 선 현장도 늘어나고 있다.

23일 도심정비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은행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지난 13일 임시총회를 열고 시공자인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과의 공사가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앞서 조합은 2019년 시공단과 가계약을 체결한 후 2022년 7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계약 이후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시공단은 지난해 공사비를 3.3㎡당 445만원에서 672만원으로 약 51% 인상하고 공사기간을 46개월에서 53개월로 연장해달라고 조합에 요청했다. 이후 양측은 공사비 협의를 이어갔지만 끝내 공사비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공사비 갈등으로 집행부 해임을 결의한 조합도 있다. 노원구 상계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지난 13일 총회에서 기존 조합 집행부 전원에 대한 해임과 직무 정지 안건을 가결했다. 해당 단지 역시 시공사인 대우건설·동부건설 컨소시엄은 공사비를 3.3㎡당 472만원에서 595만원으로 인상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조합 내 갈등이 커졌다. 지난해 12월 임시총회에서 공사비 인상 등의 내용이 포함된 관리처분계획안 수립 안건이 상정됐지만, 부결됐다. 이후 부정투표 의혹과 조합장 횡령 의혹이 제기되면서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다.

시공사 해지 후 시공사와 법적 다툼을 이어가는 현장도 있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는 지난해 1월 GS건설과 시공 계약을 체결했지만 그해 11월 공사비 인상을 이유로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시공사는 입찰보증금(대여금) 반환청구와 시공이익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해 1심이 진행 중이다.

이들 사업장 모두 계약 당시보다 크게 오른 공사비가 갈등의 원인이 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조사한 지난 2월 전체 건설공사비지수는 154.81(잠정)로 전월(154.52) 대비 0.29 올랐다. 2015년을 기준(100)으로 공사비 가격 변동을 수치화한 지수는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정비사업 추진 완화 정책을 쏟아낸 정부는 이같은 공사비 갈등에 민간 건설공사 표준계약서를 개정, 공사비 산정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고 공사비 분쟁이 우려되는 지역에는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공사비 분쟁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공사비 중재안 모두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에 그치지 때문이다.

문제는 시공사 계약을 해지한 후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현장이 점차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사비 갈등으로 공사가 멈춘 사이 발생한 금융 비용으로 조합원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데다가 정비사업 지연으로 인해 입주지연과 소송 등으로 추가 피해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공사비 상승은 인건비 문제가 크고 자재 가격 자체가 상승한 만큼 공사비가 추후 하향 조정될 가능성은 낮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상당히 상승한 만큼 한동안 현재 수준과 비슷한 수준으로 공사비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원자잿값 급등으로 정비사업 공사비가 치솟으면서 분양가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실제 신반포22차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16일 공사비를 3.3㎡당 1300만원으로 올리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서초구 방배삼호 12·13동 가로주택정비사업의 공사비(3.3㎡당 1153만원)를 넘어선 정비사업 공사비 역대 최고가다.

앞서 조합은 2017년 시공사 선정 당시 현대엔지니어링과 3.3㎡당 569만원에 계약을 맺었지만,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급등에 따라 7년 만에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공사비를 증액했다.

당초 현대엔지니어링은 조합 측에 공사비를 3.3㎡당 139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양측이 협의를 거쳐 1300만원으로 확정했다.

공사비 증액에 따라 일반 분양가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해부터 조합에 제안해 온 일반분양가는 3.3㎡당 최저 8500만원이다.

이 단지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서초구에 있지만 일반분양 가구 수가 28가구여서 상한제 규제를 받지 않는다.

대안 없는 조합, 공사비 증액 합의 잇달아
공사비 인상을 두고 도시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존 시공사와의 계약해지 결정을 번복하고 재계약에 나서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고, 건설사들의 ‘선별 수주’로 나서면서 시공사를 찾지 못한 사업장이 늘어난 탓이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공사비 인상 갈등으로 시공사 교체까지 거론됐던 서울 서대문구 홍제3구역 조합은 시공사 간 극적인 합의를 이뤘다. 조합은 2020년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3.3㎡당 공사비 512만원에 계약했지만, 지난해 시공사가 898만6400원으로 인상을 요구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그러나 약 1년 동안 공사비 증액 협상을 이어온 끝에 지난달 3.3㎡당 784만원으로 합의했다. 이는 계약 당시보다 53% 오른 금액이다.

또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2구역 재개발조합은 시공사인 라온건설과 3.3㎡당 550만원에 합의했다. 2021년 조합과 라온건설은 3.3㎡당 공사비 434만원에 가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지난해 4월 529만원으로 공사비를 증액해 조합과 계약했다가 같은 해 7월 562만원까지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조합은 지난해 11월 공사비 증액에 대한 조합원 투표 거쳐 안건을 부결시켰다. 조합은 올해 2월 시공사 선정을 위해 입찰을 진행했지만, 아무도 입찰하지 않아 유찰됐다. 결국 기존 시공사인 라온건설과 공사비 인상안에 대해 협의하고, 재선정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성남 산성구역 재개발 사업에서도 조합과 시공사간 합의가 이뤄졌다. 대우건설과 GS건설, SK에코플랜트가 컨소시엄을 구성한 시공단은 지난해 2월 3.3㎡당 661만원의 공사비를 조합에 제시했지만, 조합이 거부했다. 조합은 공사비를 낮추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조합과 시공단은 3.3㎡당 공사비 629만원에 합의했고, 오는 11월 조합 총회를 거쳐 최종 공사비를 결정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증액으로 인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건설 원자잿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올라가고, 공사비 인상은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공사비 원가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비롯해 공사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서대문구 홍제3구역 재건축조합이 공개한 조합원 공사비 변동에 따른 분양가 변동 내역 추정치를 보면, 조합원 분양가는 3.3㎡당 평균 2300만원대에서 2800만원대로, 일반 분양가는 3.3㎡당 평균 3000만원대에서 4250만원대로 상승할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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