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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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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똑똑한 작품"…영국 가는 K뮤지컬 '마리 퀴리' 뒤엔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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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웨스트엔드 진출 '마리 퀴리'

한국 창작 뮤지컬 최초 장기공연

제작자 강병원 라이브 대표

"라듐 피폭 노동자 직면한

여성 연대 팩션 매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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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 제작자 강병원 라이브 대표가 1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사무실에서 활짝 웃었다. 사진은 '마리 퀴리'의 영국판 포스터 액자에 비친 강 대표 모습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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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내던져 다 부서지게/저 높은 산도 잡념까지도~!”

한국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주인공 마리 퀴리(1867~1934)의 솔로곡 ‘두드려’다. 100여년 전 라듐 연구로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두 차례 수상하며 프랑스 과학계 유리천장을 깨부순 과학자이자, 폴란드 이민자인 마리 퀴리의 생애를 폭발적 넘버에 담았다.

한국 창작진이 한국말로 만든 이 뮤지컬 영어판이 뮤지컬 1번지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 오른다. 6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런던 채링크로스 시어터에서 영어 버전 초연을 올린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웨스트엔드 장기 공연은 이번이 최초다. 영국 공연도 한국 제작사 라이브의 강병원(46)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를 맡았다. 영국 창작진‧배우와 함께 오리지널 각본(작가 천세은)‧음악(작곡 최종윤) 현지화를 진두지휘했다.

2011년 라이브를 설립한 그는 조연출로 참여한 ‘총각네 야채가게’를 2013년 일본 라이선스 공연한 걸 시작으로, ‘마이 버킷 리스트’ ‘팬레터’ ‘랭보’ ‘마리 퀴리’ 등을 아시아 시장에 안착시킨 뒤 영미권 진출을 꾀해왔다. 지난해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담은 창작 뮤지컬 ‘광주’의 뉴욕 쇼케이스 공연도 치렀다. 강 대표를 비롯해 직원이 10명 뿐인 소규모 제작사의 반란이라 할 만 하다.



라듐 피폭 노동자 마주한 마리 퀴리…英 "똑똑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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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의 영어 버전이 오는 6월 1일부터 두달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된다. 사진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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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흥미로우면 전 세계에 통한다”는 철학으로 매 작품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온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담한 마당을 둔 한옥에 자리한 집무실은 그간 제작한 공연 포스터‧프로그램북, 공연 제작을 위한 소설‧만화책 더미로 가득했다.

“영국 갈 때마다 웨스트엔드 작품 예매 사이트에 ‘마리 퀴리’가 있는 게 지금도 신기해요. 265석 정도의 소극장이지만, 웨스트엔드 중심부죠. 두 달 간 ‘리미티드 런’ 이후 사이즈를 더 키워 ‘오픈런’(무기한) 공연까지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웨스트엔드 공연은 2002년 ‘명성왕후’가 처음이다. 한국 배우들이 열흘간 영어로 공연했다. ‘마리 퀴리’의 한국 창작 뮤지컬 최초 웨스트엔드 장기 공연까지 22년이 걸렸다. 세계적인 과학자 소재를 시대 화두인 여성‧이민자‧노동자 인권 문제로 풀어낸 작품의 힘이 장기 공연 성사 비결로 꼽힌다.

뮤지컬에선 마리 퀴리의 라듐 연구 과정과 라듐시계 공장 여직공 안느가 동료 직공들의 잇따른 의문사를 파헤치는 이야기가 맞물린다. 1917년 미국 ‘라듐 걸스’(라듐 공장 피폭 노동자) 실화를 천세은 작가가 동시대로 옮겨왔다. 이런 팩션을 통해 자신이 발견한 라듐의 유해성을 직면하는 마리 퀴리의 고뇌, 여성 연대를 강조했다. 채링크로스 시어터 측은 이 작품을 택한 이유로 “굉장히 똑똑한 공연”이라 밝혔다.



극작 전공 뮤지컬 제작자 '스토리 집중 철학'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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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가 올 2월까지 서울에서 세번째 시즌 공연했다. 사진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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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표는 2017년 창작 뮤지컬 공모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에서 천 작가의 극본을 눈여겨봤다. 라이브는 8년째 이 공모전을 주관해오고 있다. 서울예술대학 극작 전공인 강 대표는 뮤지컬에서 스토리의 매력을 가장 중시한다. 특히 주인공이 꿈을 실현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을 많이 해왔다.

그는 “요즘 좋은 작품은 여성 서사가 많은데, ‘마리 퀴리’는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조연(안느)까지 여성이다. 위인 전기식 서사를 넘어서 라듐 걸스 등 팩션을 가미한 부분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라이브가 제작진을 꾸려 2018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렸고, 2020년 국내 초‧재연을 통해 작품을 재정비하며 한국뮤지컬어워즈(2021) 대상 등 5관왕을 휩쓸었다. 올 2월까지 세번째 시즌을 공연했다. 김소향‧옥주연‧리사‧김히어라 등 스타 뮤지컬 배우들이 거쳐갔다.



퀴리 고국서 최고상 "폴란드인보다 잘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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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일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 초청된 한국 뮤지컬 '마리 퀴리'가 현지 마리 퀴리 생가 박물관에서 미니 콘서트와 토크쇼, 발코니 콘서트를 진행했다. 사진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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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가 해외 무대에서 검증받은 건 2022년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 격인 ‘황금물뿌리개상’을 수상하면서다. 마리 퀴리 생가 박물관에서 콘서트·토크쇼도 열었다. 마리 퀴리의 후손 한나 카레제프스카가 공연 영상을 관람한 뒤 “아름답고, 놀랍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연”이라 극찬했다.

안느 역 배우 김히어라는 “마리 퀴리를 고향 폴란드에서 한국말로 다루는 데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관객들이 ‘폴란드인의 정서와 아픔을 폴란드인보다 더 잘 표현했다’는 편지까지 써주더라”고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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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폴란드에서 열린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가 그랑프리인 '황금물뿌리개상'을 받았다. 제공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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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의 급성장에 발맞춰 활발해진 정부 지원도 한 몫했다. ‘마리 퀴리’도 2022·2023년 웨스트엔드에서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각각 하이라이트 및 전막 쇼케이스를 열며 진출 기반을 닦았다. 강 대표는 “최근 해외에서 창작 뮤지컬을 소개하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다양해지면서 라이선스‧오리지널 투어 공연 기회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 좋은 공연 작품이 늘면서 아시아 시장에선 작품 뿐 아니라 창작진의 진출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K뮤지컬, 본고장 美브로드웨이·英웨스트엔드 진출 물꼬



요즘 한국에서 화제가 된 작품은 대부분 일본·중국·대만 등에 수출된다. ‘마리 퀴리’도 지난해 일본 도쿄‧오사카에서 라이선스 초연을 가졌다. 그만큼 아시아 시장이 친숙해졌다. 강 대표는 “2018년 뮤지컬 ‘팬레터’ 대만 공연 때는 2000여석 공연장이 매회 거의 가득 찼다. 배우 사인회 때도 K팝·드라마·영화를 자주 접해 한국말을 잘하는 팬이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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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원 대표는 "한달에 서너번 서점에 가고, 퇴근후 넷플릭스, 웹툰, 웹서핑을 하며 다음 공연 소재를 찾는다. 일이란 생각보다 즐겁게 하고 있다. 잘 놀수록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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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무대도 한결 가까워졌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선 25일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한국인 최초로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개막한다. 강 대표도 ‘마리 퀴리’ 웨스트엔드 진출이 글로벌 관객층을 넓힐 새로운 출발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의 가능성을 보는 사람이 많아져야 향후 수익도 거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13년 간 제작한 작품 15편 중 흥행 성공작은 국내외에서 모두 잘된 ‘팬레터’ ‘랭보’ ‘마이 버킷 리스트’ 세 작품 정도죠. ‘마리 퀴리’도 아직 투자 과정의 작품이고, 향후 글로벌 공동 제작할 프로듀서도 찾으려 합니다.”

뮤지컬 IP로 영화‧드라마‧웹툰‧소설을 제작하는 2차 부가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10대 암 환자가 죽기 전 소원들을 이뤄가는 ‘마이 버킷 리스트’는 중국 마켓 피칭을 통해 홍콩 유명 감독 왕자웨이(왕가위)가 영화 판권을 구매했었다.

"중년‧노년 버전까지 ‘마이 버킷 리스트’ 뮤지컬 3부작을 제작할 생각도 있습니다. 작품을 내보일 기회가 늘어날수록 공연 제작·창작 환경도 더 좋아지니까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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