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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감사의견 거절’ 속출…위기의 K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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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상장폐지의 계절’이 왔다


매년 3월과 4월은 ‘상장폐지(상폐)의 계절’로 불린다. 12월 결산법인들이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시한이 맞물리기 때문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13개사, 코스닥 42개사가 ‘상장폐지 사유 발생 법인’으로 지정됐다. 이 중 대부분이 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단일 업종으로 보면 바이오가 가장 눈에 띈다. 바이오 한 우물만 판 기업과 신사업으로 바이오를 꼽은 기업들을 더하면 총 9곳에 달한다. 주요 감사의견 거절 사유는 계속기업 가정의 불확실성. 쉽게 말해 자금난으로 재무건전성에 적신호가 들어왔다는 의미다.

매경이코노미

올해도 다수의 바이오 기업이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사진은 한국거래소 전경. (매경DB)


‘의견 거절’ 무슨 의미?

최악의 기업 회계 성적표

감사인의 의견 거절을 이해하려면 먼저 ‘감사의견’ 개념을 알아야 한다. 감사의견은 기업 재무제표가 정상적 회계 처리 기준에 맞게 적정하게 표시됐는지 점검한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의 의견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기업의 회계 처리 성적표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감사의견은 적정과 비적정으로 나뉜다. 적정은 말 그대로 합격점이다. 회계 장부 처리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나온다. 모든 종류의 이해관계자에게 긍정적 신호다. 비적정은 정도에 따라 3가지로 나뉜다. 한정과 부적정, 거절 등이다. 한정은 회계 장부에서 약간의 오류를 발견했을 때 나오는 결과다. 예를 들어 기업 기초 잔액을 봤는데 확인 불가능한 재고가 소량 있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과제로 치환하면 ‘약간의 오답이 있는 정도’로 이해하면 편하다. 부적정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오답이 꽤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마지막 거절은 과제 일부를 아예 누락하거나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가 발견됐을 때를 의미한다.

거래소 규정상 감사의견 비적정은 주식 거래 정지나 상장폐지 사유가 된다. 상장사의 기본인 회계 장부에 문제가 생겨 투자자 보호가 어렵기 때문이다. 거래소 ‘유가증권 시장 상장 규정’에 따르면 부적정·의견 거절을 받은 기업은 상장폐지 심사 대상이 된다. 한정은 코스피와 코스닥이 조금 다르다. 코스피 상장사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상태에서 ‘감사 범위 제한에 따른 한정’을 받으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코스닥 기업은 감사 범위 제한에 따른 한정을 받으면 즉시 심사 대상이다. 물론 한 차례 기회는 주어진다. 거래소가 상장폐지 사유 발생을 통보한 날로부터 15영업일 이내에 회사는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다. 거래소는 이들 거래 정지 회사에 1년간의 개선 기한을 부여한다. 1년 뒤 지난해 감사보고서 적정을 받으면 거래 정지는 풀리고 상장폐지 사유도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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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반복 ‘바이오’ 잔혹사

자체 수익 구조 없이 신약 개발

감사의견 거절과 가장 맞닿아 있는 업종은 단연 바이오다. 매년 수많은 기업이 의견 거절을 받는다. 올해도 엔케이맥스와 웰바이오텍, 뉴지랩파마를 비롯해 제넨바이오와 제일바이오, 셀리버리, 카나리아바이오, 세종메디칼, EDGC 등이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2018년 성장성 특례 1호로 코스닥에 입성한 셀리버리다. 셀리버리는 지난해 재무제표 감사의견에서 ‘감사 범위 제한’ ‘계속기업 불확실성’ ‘자금 거래의 타당성과 회계 처리의 적정성’ 등을 이유로 의견 거절 통보를 받았다. 셀리버리는 앞선 감사에서도 의견 거절을 받은 바 있다.

감사를 맡은 삼덕회계법인은 셀리버리의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초과하는 상태라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말 기준 셀리버리의 유동부채는 546억원, 유동자산은 78억원이다. 유동자산을 모두 매각해도 유동부채 해결이 불가한 상태다. 삼덕회계법인은 “영업 부진 지속과 이를 타개하려는 경영진의 계획도 없는 상태”라는 점도 문제 삼았다. 지난해 셀리버리는 영업손실 195억원, 당기순손실 340억원을 냈다. 매년 적자가 지속되면서 결손금은 2231억원까지 불어난 상태다.

한때 주식 시장에서 관심을 모았던 항암제 개발 기업 카나리아바이오도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지난해부터 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계속기업 가정의 불확실성’을 의견 거절 근거로 제시했다. 자산이 급격히 감소하고 자본총계가 마이너스(-)로 전환,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이는 난소암 치료제 후보물질 ‘오레고보맙’ 임상 실패가 불러온 여파다. 오레고보맙은 최근 데이터안전성모니터링위원회(DSMB)의 임상 시험 중단 권고를 받았다. 카나리아바이오는 이를 무형자산 손상으로 처리했다. 지난해 카나리아바이오의 무형자산 손상차손액은 1532억원에 달한다. 삼일회계법인은 “(카나리아바이오의) 계속기업 존속 여부는 회사의 향후 자금 조달 계획과 경영 개선 계획 성패에 따라 좌우되는 중요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 다수 바이오 기업이 ‘자금 조달’ ‘유동성’ 문제로 의견 거절을 받았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산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는 사실상 자체 매출이 없다. 또 통상 신약 개발에 필요한 기간은 약 10년이다. 이 기간 동안 바이오 기업은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발행 등 외부 자금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시장이 얼어붙으며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겼다는 진단이다. 카나리아바이오 측도 계속기업 존속 여부를 위한 자금 조달 계획을 두고 “유상증자와 대여금, 매출채권의 조기 회수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영업 활동에 충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역시 핑계일 뿐이라는 지적도 상당하다. 바이오 기업도 충분히 자생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근에는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 사업을 병행하는 바이오 기업도 여럿이다. 펩타이드 기반 전문 테라피(필러)와 화장품 등을 개발해 판매하는 케어젠이 대표 사례다. 케어젠은 창업 당시 바이오 기업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캐시카우부터 만들겠다는 경영 판단 아래 펩타이드 시장에 집중했다. 펩타이드 시장에서 충분한 영업이익이 나오기 시작하자 신약 개발에 나섰다. 케어젠은 현재 노인성 안구 질환 황반변성 치료제 ‘CG-P5’ 등을 개발 중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캐시카우 없이 신약 개발 등에만 몰두하는 바이오 기업의 경우 외부 투자자 자금으로 연명한다. 이 과정에서 창업주 지분율은 희석되고 연구개발 등 각종 사업 방향성은 투자자에게 휘둘린다. 경영권을 완전히 넘겨주거나 외부 자금이 뚝 끊겨 상장폐지 위험에 처하는 사례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6호 (2024.04.24~2024.04.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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