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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지축 뒤흔드는 코끼리 짝짓기...임신은 5마리, 아비는 한 녀석? [수요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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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 동물원서 아프리카 코끼리 5마리 연달아 임신

외부서 수혈한 ‘씨코끼리’가 모두 아비로 추정

지상최대의 괴수, 코끼리의 번식은 지축이 흔들리는 메가톤급 사랑

암컷과 새끼들이 번식 현장 지켜보며 고성 지르기도

생명의 잉태 소식은 기쁨과 설렘을 안겨다줍니다. 사람이 아닌 짐승 세상에도 마찬가지예요. 먹고 먹히는 야생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고 종 보전에 일조하는 동물원이라면 더 기쁜 소식이죠. 미국 캔자스주의 한 동물원에서 들려온 어마무시한 잉태 소식이 화제입니다. 지상 최대의 야수인 아프리카 코끼리 암컷의 임신 소식이 하나도 아니고, 다섯 차례나 줄줄이 들려온 겁니다. 오즈의 마법사로 친숙한 캔자스주 최대도시 위치토에 있는 세그윅 카운티 동물원으로 가봅니다. 앞서 지난해 아프리카 코끼리 암컷 네 마리가 줄줄이 새끼를 가졌다는 소식으로 화제가 됐던 곳인데, 최근에 동물원에서 추가로 업데이트를 했습니다. 또 한마리의 암컷 임신이 확인돼 총 다섯마리가 됐다고요.

조선일보

오마하 헨리 두를리 동물원에서 위치토 세그윅 동물원으로 도착한 콜리가 담벼락을 두고 암컷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후 암컷 여섯마리 중 다섯마리가 임신했다./Sedgwick 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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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새끼 아프리카 코끼리는 다섯마리가 됐습니다. 코끼리의 임신기간은 22개월이나 돼요. 첫번째 출산 시기는 내년 봄으로 예정돼있습니다. 예비 엄마가 될 코끼리들은 시무녜, 탈리아, 졸라니, 아루시, 주베리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요. 이 동물원에는 암컷 여섯마리가 있습니다. 나머지 한 마리는 이미 가임연령을 지난 쉰 두 살의 스테파니라는 걸 감안하면 가임연령대 암컷 모두가 임신을 했습니다. 이쯤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궁금증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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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주 세그윅 동물원에서 순차적으로 태어날 새끼 코끼리 다섯마리의 아비로 알려진 스물두살의 콜리./Sedgwick 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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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는 한 놈인가? 여러 놈인가? 한 놈이라면 대체 어떤 놈인가? 일단 스물 두살의 수컷 콜리가 관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곳엔 원래 수컷 두 마리가 있었어요. 동물원 측에서 여러 차례 흘레를 붙여봤지만 번식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고, 수소문 끝에 콜리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헨리 두를리 동물원에서 지난해 모셔왔습니다. 놈은 이곳으로 오기 전부터 여러 암컷을 통해 총 다섯 마리의 새끼를 탄생시켰거나 임신시킨 타고난 씨코끼리로 명성이 자자했어요.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태어날 새끼 다섯마리의 피검사를 해봐야알겠지만, 정황상 외부 스카우트가 성과를 거뒀을 공산이 커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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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푸른 초원에서 수컷코끼리가 파트너 암컷을 뒤쫓아 가고 있다./Save The Elephants Facebook


코끼리는 네발로 걸었을 때 어깨높이(키)는 4m, 몸무게는 6350㎏에 이르러요. 풀 뜯는 괴수이자 숨쉬는 탱크입니다. 이들이 짝을 짓는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구릿빛 까끌까끌한 살집의 암수 괴수가 만나는 순간 지축이 울리면서 땅은 꺼질 듯 합니다. 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메가톤급입니다. 캔자스의 동물원에서도 최소한 다섯 차례 지축이 울렸겠죠. 사육사들과 수의사들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고요. 두 거대괴수가 밀착하면서 내뿜는 강력한 에너지는 오즈의 마법사의 회오리바람을 삼키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초록 마녀 엘파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거예요. 이렇게 메가톤급으로 진행되는 짝짓기는 암수 모두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은밀한 공간에서 진행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케냐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글로벌 코끼리 보호단체 세이브 디 엘레펀츠(Save The Elephants)가 지난해 5월 자체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동영상을 한 번 보실까요?

수컷이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암컷을 쫓아갑니다. 이 성급한 몸동작은 놈의 상태를 짐작케 합니다. 놈은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눈에 뵈는게 없는 상태’입니다. 수컷 코끼리의 특유의 발정기를 뜻하는 ‘머스트(Musth)’에 빠져있어요. 거친 얼굴 피부에는 정체 불명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소나무 송진처럼 끈적거리고 있을 거고요. 수컷 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평소에 60배에 달할 겁니다. 짝짓기철 수컷들이 공격적이고 사나워지는 건 대체로 많은 젖먹이짐승에게서 발현되는 현상입니다만, 코끼리는 그 정도가 상상초월입니다. 동물원의 코끼리 전담 사육사들은 가족처럼 돌봐온 코끼리의 돌변에 어떤 돌발사태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합니다. 통제불능 상태가 된 수컷이 마을을 습격해 쑥대밭으로 만든다거나, 심지어는 코뿔소나 물소 등 애먼 짐승들을 상대로 몹쓸짓을 저질러 신체를 끔찍하게 훼손한다는 목격담까지 전해질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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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초원에서 막 짝을 지으려던 코끼리 주변으로 암컷의 무리가 몰려들고 있다./Save The Elephants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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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컷 코끼리가 암컷을 졸졸 쫓아다니는데, 별안간 한 무리의 코끼리떼가 몰려듭니다. 바로 짝짓기 상대 암컷의 ‘식구들’입니다. 코끼리는 지능도 높고 사회성이 강한데, 특히 무리생활에선 ‘암수칠세부동석’을 철저하게 준수합니다. 먼저 암컷과 어린 새끼들로 이뤄진 무리가 있는데, 삶의 경험이 풍부한 나이많은 암컷이 여왕 노릇을 하면서 집단을 이끕니다. 그런데 ‘아들’로 태어난 새끼가 무럭무럭 자라서 수컷의 본능을 발현할 열 살 무렵의 나이가 되면 가차없이 무리에서 쫓겨납니다. 이렇게 쫓겨난 수컷들은 수컷들만으로 구성된 느슨한 무리에서 생활을 하다가 ‘머스트’에 접어들면 본능에 날뛰는 우락부락한 괴수가 돼 암컷을 찾아 미친듯이 질주합니다. 그 순간을 포착한게 이 영상이에요. 이제 막 본능을 발산하려는 한쌍의 괴수. 그러나 암컷의 식구들이 떼로 몰려오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쉴새없이 소리를 질러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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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중인 코끼리 주변으로 몰려든 암컷과 새끼의 무리들./Save The Elephants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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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우우우~” “뿌우우~” “뿌~” “뿌우우우우~” 동족들이 만들어내는 굉음 속에 암수는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않고 짧지만 강렬하게 만리장성을 쌓습니다. 소기의 목적이 달성됐다면 22개월 후에는 암컷은 앙증맞은 새끼를 세상 밖으로 내보낼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동물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지능과 사회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이들이기에 짝짓기 현장으로 몰려오는 암컷과 새끼들이 내는 건 그냥 울음소리가 아닙니다. 나름의 의미와 속뜻을 담고 있을 거예요. 어쩌면 이런 뜻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저런 놈팽이가 대체 뭐가 좋다고~”

“그래도 지난번에 껄X대던 그 자식보다는 허우대가 멀쩡한데?”

“아유, 옛날 생각 나네. 그 영감X이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러게. 상아가 참 훤칠했는데, 혹여 포수놈들한테 잡힌 건 아닌지 몰라. 쯧”

“언니가 덩치가 훨씬 작은데 왜 오빠를 어부바해?”

짧지만 강렬한 만남은 그렇게 시끌벅적함 속에 마무리됩니다. 앞으로 태어날 새끼가 떡두꺼비 같은 숫놈일 경우, 사춘기 무렵이 되면 가차없이 제 어미로부터 내쫓길테고요. 그렇게 거칠면서도 일관성 있는 무리의 법칙으로 사바나의 아프리카코끼리, 숲속의 둥근귀코끼리, 아시아코끼리들은 대를 이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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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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