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거운 고용시장은 주식시장엔 악재로 통하기도 하죠. 고용이 급증하면 보통은 물가가 들썩거리기 마련인데요. 혹시 이를 우려해서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인하를 주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고용 미스터리’가 풀린 듯합니다. 해답은 바로 이민에 있었죠. 불법이민과 미국 경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지난 16일 미국 일리노이주 리버우드의 건물 담벼락에 구인 공고가 붙어있다. 여전히 고용시장이 뜨거운 가운데, 매달 수십만개 일자리가 추가되는데도 물가는 비교적 안정됐다는 게 ‘미스터리’로 통한다.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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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서프라이즈의 진짜 이유
지난 5일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발표한 3월 고용보고서에 시장이 깜짝 놀랐습니다. 비농업 고용이 전달보다 무려 30만3000건이나 늘었기 때문인데요. 예상치(21만건)를 훌쩍 넘어선 기록이었습니다.
이런 ‘고용 서프라이즈’ 미국에선 한두 번이 아닙니다. 2023년 이후 15번의 고용 보고서에서 무려 11번이 전망치를 웃돌았고요. 그 차이가 10만명 넘는 경우도 5차례나 됐는데요. 어떻게 고용이 이렇게 계속 서프라이즈일 수 있을까요. 매달 수십만 개의 추가되는 일자리를 채우는 건 도대체 누구일까요. 고용이 급증했는데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어떻게 3%대로 안정돼 있을까요.
이에 대해 미국 씽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가 3월 낸 연구보고서가 화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게 다 ‘불법이민의 효과’라고 합니다.
미국 의회예산국이 지난 1월에 추정한 2000~2024년 이민자 분류별 증가 추이. 합법적인 이민자와 임시비자가 있는 이주민 증가세는 이전과 큰 차이 없지만, 진한색으로 표시된 ‘기타 이민자’는 엄청나게 늘어나 지난해 240만명에 달했다. 기타 이민자는 아직 법원의 허가를 받지 못한 채 체류 중인 불법 이민자를 뜻한다. 브루킹스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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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기초자료는 올 1월 미국 의회예산국(CBO)이 발표한 이민자수 추정치인데요. CBO는 지난해 미국의 순이민자수가 무려 330만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했죠. 이게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잘 안 잡힐 텐데요. 기존 최고 기록이 2005년 190만명인데, 이걸 140만명이나 초과한 겁니다. 어마어마하죠.
이런 불법 이민자 중 상당수가 저임금 블루칼라 노동자로 채용되고 있는 건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강력한 이민이 계속된다면 미국의 신규고용이 얼마나 늘어날지를 계산했는데요. 그 결과가 꽤 놀랍습니다.
과거 미국에선 월 6만~10만명 정도 일자리가 증가하는 게 적정선으로 통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는 신규 취업자 수 균형점이 그 정도라는 뜻이었는데요. 최근의 이민 물결을 반영한 결과, 그 수치가 월 16만~20만명으로 확 늘어납니다. 신규고용이 기존 전망의 두 배로 늘어나도 물가가 들썩거릴 일이 없다는 거죠. 이민자 급증이 미국 노동시장의 공식을 바꿔놓은 셈입니다. 다시 말해, 월 20만명쯤의 고용 증가는 이제 ‘뉴노멀’이 됐습니다.
이 연구를 담당한 웬디 에델버그 브루킹스연구소 이사(전 연준 이코노미스트)는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연구결과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연준의) 통화정책이 노동시장을 둔화시키기 위해 생각만큼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5월 텍사스주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다.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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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킹스연구소는 이민 증가가 고용시장뿐 아니라 소비 호황에도 한몫한다고 분석합니다. 밀려든 이민자들이 지난해 미국의 실질 소비자지출을 0.2%포인트 끌어올렸다는 추정인데요. ‘왜 이렇게 소비 지출이 계속 늘지?’에 대한 답 역시 이민에서 찾을 수 있단 겁니다. 요약하자면 미국 경제가 잘 나가는 건 여러모로 이민 급증 덕분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혹시 브루킹스연구소는 진보 성향이라 이민에 대해 긍정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볼 건 아닙니다. 고용시장 활황이 이민자 덕분이란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FHN파이낸셜과 모건스탠리는 이민 증가를 반영해 고용시장 균형점(물가 상승 없는 고용 증가폭)을 월 26만5000명으로 높여 잡았습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11일 보고서에서 “이민이 일자리와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고, 이런 추세는 2024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죠. 하버드대학의 제이슨 퍼먼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 라디오에서 노동시장 강세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한 단어, 이민자.”
파월 의장은 이달 초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미국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죠. 아울러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경제는 더 커졌지만 더 타이트하진 않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는 지난달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했을 때도 이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하진 않을 겁니다. 이민과 노동력 참여가 지난해 우리가 이룬 매우 강력한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말하는 건 사실을 보고하는 것뿐입니다.”
“더 많은 이민자” 외치는 기업들
만약 이민 급증이 정말 미국 경제를 강하게 만든다면, 나아갈 방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민자에 문을 더 활짝 열어야죠.
지난 3일 콜로라도주의 한 할인마트에 구인 광고가 붙어있다.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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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에서 44개 호텔을 경영하는 잔 가우텀 CEO는 AP뉴스 인터뷰에서 객실 청소와 세탁 일을 맡을 미국인 근로자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경제를 부흥시키려면 확실히 더 많은 이민자가 이 나라로 와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죠.
텍사스주 건설사 CEO인 에디 마틴은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사업을 잃고 있다. 숙련된 근로자가 노령화됐고, 이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인력부족으로 주택 건설 기간이 9개월에서 14개월로 늘어났는데요. 그는 의회가 더 많은 이민자 고용을 위해 새로운 취업비자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타이슨푸드는 미국 최대의 육류가공업체인데요. 지난달 뉴욕시의 비영리 난민지원단체와 협업해 남미 출신 망명신청자 80여 명을 테네시주 훔볼트 공장에 채용했죠. 고기를 세척하고 자른 고기를 담고, 뼈를 검사할 미국인 근로자를 구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인데요. 이 회사 관계자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만약 우리가 그들을 찾을 수만 있다면 추가로 4만2000명을 고용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 인디애나주 게리시에 트럭 운전기사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가 붙어있다.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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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정부가 취업허가만 내준다면 이민자를 대거 채용할 준비가 되어있는 건 기업만이 아닙니다. 일부 주 정부도 구인난 해소를 위해 이민자 채용 문을 활짝 열고 있는데요. 지난해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 일리노이주는 미국 시민권이 없는 이민자도 경찰로 채용할 수 있게 법을 바꿨죠. 그만큼 경찰 할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만든 고육책인데요. ‘외국인이 미국 시민을 체포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식의 비판도 나왔지만, 점점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는 주 정부가 늘어만 갑니다.
좋은 정치와 나쁜 경제
이민자에 대한 이 강력한 수요를 채워주는 방법은 사실 간단합니다. 현재 미국 연방법에 따라 법원에 망명신청을 하면 180일이 지난 뒤에야 취업허가가 나오는데요. 이 기간을 대폭 줄여주면 됩니다. 난민이 몰려들어 골치인 도시는 혼돈에서 벗어나고, 일할 사람이 없어서 골치인 지역은 구인난을 해소할 수 있으니 윈윈이죠. 이는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이민자에 신속한 법적 허가를 부여해서 수많은 뜨거운 노동시장 중 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 이민자와 고용주, 그리고 미국 경제에 승리를 제공할 겁니다.”
하지만 11월 대선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가 그런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 미국 대선의 가장 큰 이슈가 바로 이민문제이기 때문이죠. 밀려드는 불법 이민자들로 인해 지난해부터 국경 지역엔 비상이 걸렸죠. 공화당 출신 주지사들은 이민자들을 민주당이 집권한 뉴욕, 시카고 등으로 실어 날랐고요. 대도시 곳곳이 이민자 수용소가 돼버린 혼란상이 언론에 연일 보도됐죠. 여론은 돌아섰고 바이든 대통령의 이민 정책엔 이미 ‘실패’라는 딱지가 붙었는데요.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혐오를 부추기는 공세(‘이민자가 피를 오염시킨다’)까지 이 틈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미국 텍사스주에서 불법이민자 가족이 당국에 의해 구금되고 있다.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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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럽은 매달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진행하는데요. 올해 2월과 3월, 두 달 연속으로 이민(28%)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민이 경제(14%)나 인플레이션(11%)보다 더 중대한 문제라니. 놀라운데요. 갤럽 여론조사에서 이민이 1위에 오른 건 5년 만에 처음입니다. 그만큼 이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이례적으로 커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은 경제에 좋다’는 경제학자 말이나, ‘더 많은 이민자를 달라’는 기업의 목소리가 잘 통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조급해진 바이든 대통령은 “국경 폐쇄 가능성”을 운운하며 최근엔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는데요.
투자회사 록펠러 인터내셔널의 루치르 샤르마 회장은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민 단속은 좋은 정치지만 나쁜 경제입니다.(…) 정치적 반발이 (경제적) 횡재를 위태롭게 합니다.(…) 현명한 정치인은 혼란스러운 불법 이민 통제와 반이민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제한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균형 잡기란 어렵습니다. 특히 대선을 앞둔 시점에는. By.딥다이브
얼마 전 딥다이브 네덜란드 반이민 정책 편에서 “이민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를 파괴하는 것”이란 이민 전문가 발언을 전해드렸는데요. 이민의 나라, 미국은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고용이 이렇게 빠르게 급증하는데 왜 물가 상승률은 안정돼있을까. 미국 경제학자들을 지난 1년간 혼란에 빠뜨렸던 ‘고용 미스터리’인데요. 이제 그 답을 찾아가는 듯합니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이는 불법이민 효과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민으로 노동력 공급이 급증하면서 전보다 고용시장 균형점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도 월 20만명의 취업자 수가 추가될 수 있는 겁니다. 뜨거운 고용시장을 식히려고 연준이 그리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죠. 투자자들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소식입니다.
-이미 건설, 숙박, 식품 관련 기업에선 ‘더 많은 이민자를 채용하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일부 주 정부는 경찰 구인난 해결을 위해 이민자를 경찰로 채용하려 합니다.
-문제는 정치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이민에 대한 거부감이 유례없이 커졌습니다. 초조해진 바이든 대통령이 국경 폐쇄를 운운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러다 ‘이민 대박’의 기회를 망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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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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