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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ET대학포럼] 〈170〉정책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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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2008년 5월 말, 한국연구재단 설립에 대한 공청회가 개최됐었다. 이날 제안된 한국연구재단 설립은 기존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 그리고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해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한해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연구개발 예산을 관리하도록 하는 계획이었다.

당시 공청회에서는 설립안 자체가 쟁점이었지만 정작 핵심은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이었다. 무려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누가,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는 당시까지는 가히 누구도 설계해 보지 못한 조직과 운영체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포괄하는 국가적 차원의 사업 관리조직을 그 운영방안과 함께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실상 이날 여러 가지 혁신적인 그렇기에 과학자나 심지어 사업관리 전문가들에게조차 생경한 제안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비상임 이사장와 상근 기관장으로 지배와 운영을 분리하고 전문성을 조직경영 차원에 구체화하고자 했다. '프로젝트 매니저'(PM:Project Manager)제도를 폭넓게 도입해 분야별로 해당 분야 최고 수준의 연구자가 직접 연구사업의 기획에서 연구과제의 평가, 선정 등 전 과정을 맡도록 한 점도 기존 행정적 연구관리체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혁신적 제안이었다.

어떻게 우리가 갖고 있는 각계 각 분야 최고의 연구자를 이 연구관리체계에 수용할 것인가는 고민은 이 PM제도만으로 충분할 수 없었다. 이날 발제에서는 덜 드러났지만 학문단위 대·중 분야별로 선임될 상근 PM의 전문성을 보강하고 평가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세부 분야별로 학계에서 인정하는 우수 연구자 풀을 구축하고, 이 연구자 풀에서 평가위원을 중립적으로 선정함으로써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가 작성한 연구계획을 최고의 전문가들이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되짚어 보면 이 공청회가 당시 한국학술진흥재단 대강당에서 열린지 벌써 15년이나 지났다. 지금 한국연구재단은 2022년 기준으로 과제수 약 3만5000개, 사업비는 거의 8조원을 운영·관리하는 거대 기관이 되었다. 물론 국가의 학술 및 과학기술 진흥과 연구역량 제고에 기여한다는 한국연구재단법 상의 설립 목적도 충실하게 달성해 오고 있다고 판단된다.

2008년 설립 당시 도입했던 PM제도는 지금도 이 기관의 학술 및 연구개발 활동의 지원·관리 기능의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은 지금 전문위원(RB:Review Board) 제도로 운영 중인 연구분야별 최고의 전문가에 의한 연구사업 관리라는 틀은 현재 기초연구본부에만 137개 분야, 인문사회연구본부에 121개 분야, 국책연구본부에 86개 분야로 확장되었고, 이 하부에 있는 세부분야는 이것보다 훨씬 많은 2500개 분야에 달한다. 물론 지금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는 1000명이 넘는다.

우리는 정책을 연구하고 기획하면서 항상 반복된 질문을 받는다. 당신이 제안하는 그것이 진정 최선이냐고. 실상 우리는 이것에 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답이기도 하다. 진정 우리가 새로운 제도와 운영방식을 필요로 하는 국가적 변곡점에 서있고, 기존 방식을 고쳐 쓰는데 한계를 직면한 그 순간 우리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의도된 불확실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렇게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있어서의 표준성과지표체계라는 것을 도입했고, 과학기술혁신본부라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시도했다. 물론 지금까지 존속되지 못한 제도도 있고 평가가 엇갈리는 시도도 있어 왔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지난 후에도 여전히 번영하고 있는, 하지만 그것이 제안되던 당시로서는 다수가 반대하던 시도도 있다.

이런 정책들이 과학기술정책의 미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 제자리에 멈추지 않으려 했던 시도만큼은 과학기술정책의 미래를 위해 빠질 수 없겠다. 물론 모든 정책도 이와 다름 있을 리 없겠지만 말이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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