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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한국·대만은 반도체 경쟁자?… 공급망 연합전선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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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이 17일 타이베이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 등 인도·태평양 국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타이베이 김성훈 기자


"미래의 TSMC는 대만뿐만 아니라 세계의 TSMC가 될 것이다."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이 지난 17일 타이베이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일본·인도·뉴질랜드 취재진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우 부장은 "일본과 관계를 예로 들면 예전에는 선진적인 일본이 대만에 투자해 산업에 도움을 줬는데 이제는 그 반대 상황이 됐다"며 "인도와 미국 등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TSMC는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7.9%와 전체 수출액의 12.5%를 차지하는 국가 대표 기업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반도체 가치가 더욱 커지면서 TSMC는 물론이고 대만까지 글로벌 공급망의 '본진'으로 대접받고 있다. 중국과 지정학적 갈등을 겪고 있는 대만의 전략적 가치도 한껏 끌어올렸다.

이달 들어 대만 동부에서 잇따라 강한 지진이 발생하자 세계가 TSMC의 '안부'를 걱정하는 상황마저 펼쳐졌다. 이 때문에 TSMC는 대만에서 '호국신산'(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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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대만 총통에 취임할 라이칭더 당선인도 후보 시절 반도체 역량 강화를 위한 '대(大)실리콘밸리' 공약을 내걸었다. 세계 경제안보 판도를 좌우할 '전략자산'인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지렛대 삼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라이 당선인은 지난 19일 대만 반도체 산업의 '심장'인 신주과학단지에 있는 20여 곳의 반도체 관련 업체와 좌담회를 하고 "반도체 산업은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확고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미래 능력의 핵심 기둥"이라며 화끈한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AI 혁명과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협력 문제도 중요하게 거론됐다.

우 부장은 "탄력적인 공급망을 형성하려면 한국, 미국, 일본, 독일, 인도 등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 함께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은 점차 신뢰할 수 없는 국가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만은 친(親)중국 성향인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 집권 시기 해외직접투자(FDI)의 80% 이상을 중국에 집중했지만 작년에는 이 수치를 11%까지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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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부장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주요 한국 반도체 기업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펼쳤다. 이와 관련해 그는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 구도를 이룬다는 시각을 두고 "두 나라의 생산 품목은 사실 그다지 비슷하지 않다"며 "서로 지나친 경쟁을 벌이지 않도록 연합을 맺을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친미·독립 성향 차이잉원 정부의 대외정책을 이끌고 있는 우 부장은 인터뷰에서 대만이 중국에서 받고 있는 안보 위협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다음달 20일 출범할 라이칭더 정부의 첫 국가안전회의(NSC) 비서장으로도 지명돼 국가안보 전반을 계속 총괄하게 됐다.

대만 현지 전문가들은 중국이 라이칭더 정부 출범 이후 경제·안보 압박은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개입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 부장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만을 중국의 군사적·경제적 강압과 (가짜뉴스 유포 등)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고통받는 유일한 국가로 생각한다"며 "대만이 최전방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은 대만만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동·남중국해에서 일본·필리핀 선박들을 강압적으로 쫓아내는 등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의 안보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이 대만 사회에 조직적으로 가짜뉴스를 통한 인지전을 펼쳐 안보 불안과 '미국 회의론'을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 부장은 "대만은 중국을 도발하지 않지만,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지도 않는다"며 중국이 자신들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에 비해 수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전자전·사이버전 등 비대칭전 역량을 강화해 중국에 대한 억제력을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와 이달 미·일·필리핀 정상회의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안보 질서를 국제사회의 중국 견제 강화로 해석했다.

이날 우 부장은 '세계의 반도체 공장'인 대만과 전 세계 교역 물자의 절반이 지나가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만이 불안해져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면 전 세계가 매우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지난 1월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대만 다음으로 큰 경제적 충격에 휩싸일 국가로 한국을 지목한 바 있다.

우 부장은 "중국 팽창주의 위협을 이해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더 많아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더 많은 나라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과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타이베이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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