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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윤석열 대통령은 9수를 했다 [권태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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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을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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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해는 1979년이다. 1982년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최종 합격은 9수 끝 1991년이었다. 신림동 고시원에 있기도 했고, 아버지가 재직 중이던 연세대에서 초기엔 권영세 의원(77학번, 1983년 합격)과 후기에는 나경원 전 의원(82학번, 1992년 합격) 등과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다.



9수를 하려면, 우선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멘탈이 강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덜 공부해야 한다. 신림동에서 잠깐 동안 함께 공부했던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윤 대통령은 오전 늦게 후배들을 이끌고 아침 겸 점심을 오후 늦게까지 먹고, 다 같이 관악산에 올라갔다가, 저녁 무렵 먹자골목인 녹두거리로 다시 내려오는 일이 꽤 많았다 한다. 또 본인이 직접 밝히기도 했지만, 동양철학·우주과학 등 온갖 잡학에 관심을 빼앗겨 밤새 수험서 아닌 책들을 탐독할 때도 많았다. 어떤 이슈도 모르는 게 없으니, ‘59분’ 별명이 붙게 됐다.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등 양자역학 과학자들 앞에서 ‘양자과학기술 현재와 미래의 대화’를 주재한 적이 있다. 비공식 자리에서도 양자역학에 대해 윤 대통령이 많이 이야기하고, 교수들은 들었다고 한다.



다시 수험생 시절로 돌아가면, 막판엔 후배들을 가르쳤다. ‘이 문제가 나올 것’이라고 족집게 강사 노릇도 했다. 그 말 들은 후배는 합격했는데, 정작 윤 대통령은 떨어졌다. 이유를 물으니, “안 봤어”라고 답했다. 마지막 매무새가 꼼꼼치 않고 헐거운 것이다. 9수에는 다 이유가 있다. 윤 대통령 사법연수원 동기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84학번 외교학과), 강용석 전 의원(88학번 법학과) 등이다.



지금 윤 대통령은 총선에 참패해 5년 내내 여소야대에 처하게 됐다. ‘탄핵’, ‘임기단축 개헌’ 등의 단어가 시사프로그램에서 심심치 않게 나온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지난 22일 예고도 없이 브리핑룸을 두 차례나 불쑥 찾아 직접 정진석 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임명을 알리고 1년5개월 만에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했다. (대통령이) ‘기자 질문 받아’가 다음날 신문기사 제목이었다. 대통령은 웃는 낯이고, 일부러 그런 척하려는 것일 수 있으나, 여유로워 보였다. 대개 정권 초기 분위기 좋을 때,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수석들을 브리핑룸에서 직접 소개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말하며 그렇게 했다.



브리핑룸 걸어잠그고 수석·비서관들만 앉혀놓고 대국민 담화 하던 때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들 ‘대통령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대개 ‘말’로는 바뀌겠다고 하면서, ‘행동’이 안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금 윤 대통령은 ‘말’로도 바뀌겠다고 한 적이 없다. 그날 브리핑룸에서도 ‘국정 운영이나 소통 방식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메시지를 낼 때 평균적인 국민들이 이해하고 알기 쉽게 하자는 뜻”이라며 “2년 동안 국정과제를 설계하고 집행하는 쪽에 업무 중심이 가 있었다. 지금부터는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더 설득하고 소통하겠다”고 했다. 참모들에게 ‘바뀌라’고 지시한 것이다. ‘방향은 제대로 세웠으니, 제대로 알려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평균적인 국민들’이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가. 대선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가난하면 자유 몰라”, “부정식품이라도, 없는 사람은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결별하며 지지율이 추락할 때, 극적으로 화해하며 서로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거부했던 이 대표 제안인 ‘출근길 아침인사’도 했다. 그러나 몇달 뒤, 이준석 대표 비난 메시지에 ‘체리 따봉’ 이모티콘을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보냈고, 얼마 뒤 이 대표는 당에서 쫓겨났다.



윤 대통령은 취임 2년 동안 자잘한 의전 실수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국군의 날 ‘부대 열중쉬어’ 생략, 영국 총리공관 앞 지나치기, 나토 정상회의 입장 시 거꾸로 된 부부 위치, 사진 촬영 위치 몰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안내한 일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긴장을 하지 않고,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참모들의 말을 흘려듣기 때문이다. ‘실수’ 뒤에도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된 이후 여러번 낙방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부산 엑스포 유치, 총선에서 모두 참패했다. 9수를 채우려면 앞으로 5번을 더 겪어야 하는가. 과거 9수는 개인 몫이지만, 지금은 국민들이 함께 겪고 있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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