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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일사일언] AI가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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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나 카페에 갔다가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는 노인들을 만나곤 한다. 테이블에 앉아 서빙 로봇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풍경도 이제 낯설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서 있던 자리를 기계 장치가 대체하고 있다. 내키든 내키지 않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기계로 대체되는 범위는 앞으로 더 넓어질 것이다. ‘사람의 일’로 이뤄지던 것이 ‘기계의 작업’이 되어버린 세계. 이야말로 공상과학소설(SF) 속 이야기가 아닌가.

로봇이나 인공지능 모두 처음엔 인간 상상의 산물이었다. 1984년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했던 악역 수퍼컴퓨터 ‘스카이넷’은 인간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지닌 존재로 묘사됐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시리즈 시작으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요즘 SF에서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달라졌다.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악마화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일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Saying Goodbye to Yang’ 속 인공지능은 인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가깝고도 친근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자동 주문을 받아주는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이는 노인들처럼 여전히 이들의 존재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AI는 편의성과 위협 그 사이 어딘가의 경계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예술계에서도 AI는 비껴갈 수 없는 이슈다. 최근 일본의 구단 리에는 소설 ‘도쿄도 동정탑’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일본 내외의 문학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까닭은 소설의 5%가 챗(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문장으로 씌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창작’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다. 예술이나 문학이 사람만의 일이 아닐지 모른다는 종언을 예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롤랑 바르트가 말했던 ‘저자의 죽음’이라는 개념이 정말로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추성은·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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