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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덕성여대, 독문-불문과 폐지… 인문학 소멸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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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재 대학 첫 2개과 동시 폐지

대학측 “수요 적은 비인기학과 정리”… 교수들 “단편 시각 막무가내 추진”

문과생 감소-무전공 선발 확대로… 인문학과 통폐합 가속 우려 커져

덕성여대가 내년부터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대표적인 외국어 학과인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가 동시에 폐지되는 건 처음이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문과 소외 현상도 심해지면서 이처럼 인문대 학과를 없애거나 통폐합하는 사례가 늘어날 거란 전망이 나온다.

● “AI로 수요 줄어” vs “단편적 시각”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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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덕성여대는 전날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회에서 2025학년도부터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에 신입생을 배정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학 측은 이런 내용의 학칙 개정안을 지난해 6월과 올 2월에 공고했다가 학내 심의·자문 기구인 대학평의원회가 부결시키자 지난달 26일 다시 공고했다. 이달 5일 세 번째로 열린 대학평의원회에서 위원들이 두 학과의 폐과를 과반 찬성으로 가결하면서 이같이 결정됐다.

대학 측은 경영난을 이유로 학사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학령인구 감소, 장기간 등록금 동결 등으로 수입이 줄면서 매년 약 100억 원의 적자를 얼마 남지 않은 적립금으로 메우고 있기 때문에 비인기 학과를 정리하고 수요가 높은 학과에 투자하는 건 대학의 책무라는 얘기다. 학내에선 통·번역 인공지능(AI)의 발달로 관련 학과 수요가 줄어들 거란 예측도 한몫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건희 덕성여대 총장은 “지난해 평가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유지가 힘든 전공에 대한 학사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학내에선 반발이 나왔다. 불어불문학과의 한 교수는 “AI 통·번역 기술이 발전해 두 학과가 필요 없어진다는 주장은 언어와 엮인 문화와 풍토를 무시한 단편적인 시각”이라며 “학교가 결국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대학 측이 평의원회를 지속해서 압박함으로써 개정 학칙을 통과시켜 학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며 평의원회에서 사퇴했다.

● 문과생 급감하고 ‘무전공 선발’ 늘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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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소외 현상이 퍼지면서 인문대학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없애는 사례는 늘고 있다. 동덕여대는 2022년 독일어과와 프랑스어과를 통합했다. 2021년 삼육대는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를 항공관광외국어학부로 합쳤고, 2020년 한국외국어대는 영어통번역학부 등 4개 학부·전공을 융합인재학부로 통폐합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문과생 응시 비율은 2021년 53.7%에서 올해 48.3%로 줄었다.

정부의 무전공(전공 자율선택제) 선발 확대 정책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많다. 무전공 선발은 입학한 뒤 여러 전공을 탐색하다 2학년에 올라갈 때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확대되면 인문계열 비선호 학과는 중장기적으로 폐과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현장에선 팽배하다. 서울 지역의 한 대학 총장은 “학생들 선택이 사회계열에선 경영학과, 자연계열에선 공학이나 반도체 관련 학과에 쏠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학교수는 “그동안 인문계열 어문학과 등은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확정된 정원에 숨어서 생존해 왔던 게 사실”이라며 “학생들에게 무제한 전공 선택의 자유가 부여되면 선택받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을 해당 학과 교수들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엄연석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수석부회장은 이번 덕성여대의 폐과 결정에 대해 “인문학의 소멸은 국민들의 인식 수준에 장기적으로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대학마다 학과의 가치, 기준을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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