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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조선업 도약이 '석화 적신호'인 이유[우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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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사실 '석유화학 제품 운반선(Product Chemical Tanker: PC선)' 시장도 호황입니다"

액화천연가스(LNG)선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A 조선사 임원이 한 말이다. 요즘 PC선 수주가 늘고 가격도 올라 수익성이 높다고 설명하는 그의 표정은 밝았다. B 석유화학사 임원에게 이 얘기를 전했더니 불황 탓에 그렇지 않아도 밝지 않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늘어나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수요는 정체된 반면 중국의 수출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석유화학 업계는 최근 조선업계 PC선 시장 호황을 '중국발 2차 리스크'의 서막으로 받아 들인다. 중국이 자국 설비 증설을 통해 석유화학제품 자급 체계를 구축한 게 1차 리스크였다. 고도화된 석유화학 설비가 없던 시절, 중국은 한국 석유화학업계의 '돈줄'이었다. 업계가 수출하는 물량의 절반 이상을 중국이 수입했다. 이제 중국이 자급체계를 갖추자 중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40%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현재 진행형인 업계 불황의 원인이다.

2차 리스크는 1차 리스크가 한창인 가운데 업계에서 간간이 언급돼 왔다. 중국이 자급 체계 구축을 넘어 석유화학제품 순 수출국으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이미 합성수지 원료인 스티렌모노머(SM)는 중국산이 한국에 역수출된다. 일부 제품은 순수출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여기에 PC선 업황이 호조를 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발주처 정보 공개에 말을 아끼는 조선업계는 최근 PC선 발주 랠리의 진앙지가 "아시아 지역이 맞다"고 털어 놓고 있다. 사실상 중국이다. 2년 뒤 건조된 PC선이 저가의 중국산 물량을 싣고 한국을 누비는건 석유화학업계에 악몽이다. 조선 호황이 석유화학엔 2차 리스크가 되는 내막이다.

석유화학업계는 부랴부랴 생존전략을 짠다. 하지만, 대책 마련을 위한 타이밍을 놓쳤다. 중국이 70%에 미치지 못한 석유화학제품 자급률을 100%로 올린다는 목표를 공언한 건 10년 전이다. 이미 오래전 예견된 위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 업계는 지난 10년간 오히려 나프타분해설비(NCC) 등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는 설비 증설에 나섰다. 대응 시점도 늦은데다 현재 구상중인 생존전략도 사안의 심각성에 비하면 뜨뜻미지근한 감이 있다. 고부가 제품 위주의 사업포트폴리오를 갖추는 한편으로 수익성 낮은 일부 사업을 정리하는 게 현재 업계의 대책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 앞에서 늦은 만큼 속도를 내야 하는 시기다. 경쟁력을 잃어가는 NCC 등 고정비가 큰 설비 정리에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 NCC 재편에 대한 언급이 나온 건 지난해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간다. 그러는 사이 중국산 석유화학 제품을 실은 배가 우리의 시장을 장악할 때가 시시각각 다가온다. 1차 리스크에 이어 2차 리스크가 덮치도록 구체적인 액션을 하지 못하는 건 직무유기다.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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