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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국정농단 특검, 시즌2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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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채상병 특검법 수용 촉구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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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 사회부장





이 사태의 본질은 기이함입니다. 좀 섬뜩하기도 합니다. 속 시원한 설명도, 뻔뻔한 해명도, 수긍이 되는 가설도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일이 벌어진 지 반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은 ‘윤석열 대통령 격노설’에서 시작합니다. 수색작전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의 책임을 물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경찰에 사건을 넘기겠다고 하자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어떡하냐’며 엄청나게 화를 냈다는 게 발단이라는 겁니다.



‘검사 윤석열’은 형사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의 경계에 있는 일을 지휘부의 형사 책임으로 구성하는 데 누구보다 전문가이자 적극적이었던 인물입니다. 그런 이가 ‘이런 일로 사단장을 왜 처벌하느냐’며 격노했다는 점, 채 상병 사망 직후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대통령 공식 입장까지 냈다는 점 등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임성근이 도대체 누구길래?’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 나왔습니다.



답은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임성근 전 1사단장은 윤석열 정권의 개국공신도, 주요 부처 장관도 아닙니다. 윤 대통령과 사적 인연이 있는 인물은 더더욱 아닙니다. 쉽고 편한 설명이 부재하자 ‘양자역학’급 설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세 ○○○와 ○○○ 간 알력싸움설’, ‘또 다른 실세 ○○○과 임성근의 특별한 인연설’, ‘임성근의 구명운동 성공설’ 등입니다. 하지만 모두 저마다의 약점 탓에 정설이 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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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2022년 12월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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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 임명은 ‘격노설’보다 해석이 훨씬 힘든 난제입니다. 이 전 장관을 향한 수사가 본격화하고, 윤 대통령 본인이 위협을 느껴 벌인 자충수라는 설명이 정설에 근접했습니다만, 너무 수가 얕다는 결정적 흠결이 있습니다. ‘정말 그 점 때문인가’라는 찜찜함이 남습니다. 타이밍도 너무 이상했습니다. 윤 대통령 쪽 사람들조차 ‘이종섭을 국외로 내보낸다 해도 왜 하필 총선을 코앞에 둔 지금이냐’고 탄식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전 장관 대사 임명’은 결코 일사천리로 진행됐을 수 없는 사안입니다. 대통령실 외교안보라인 혹은 외교부 관리 중 누군가는 분명 반대했을 것입니다. 호주 대사는 외교부 차관보나 국장급이 가는 자리입니다.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인사를 호주 대사에 임명하는 건 쉽게 떠올리기 힘든 선택지입니다. 피의자를 해외 주재 대사로 임명한다는 발상 자체도 외교 관례와 상식을 한참 벗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이한 결심은 실행됐습니다. 반대를 무릅쓴 것입니다. 밀어붙인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툭 불거진 실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끝내 관철해낸 무형의 그 의지가 좀 섬뜩합니다.



총선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달 2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기간을 거쳐 지난 3일 본회의에 올라와 있습니다. 언제든 상정해 표결만 하면 됩니다.



특검법의 정식 이름은 깁니다.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입니다. 이름에 담겨 있듯 수사 대상은 외견상 명확합니다. ①채 상병 사망 사건 ②사망 사건과 관련된 대통령실, 국방부, 해병대 사령부, 경북지방경찰청 내 은폐, 무마, 회유 등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과 이에 관련된 불법행위 ③각 혐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입니다.



특별검사는 이종섭 전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따져볼 것입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인정 여부도 볼 것입니다. 대통령실에서 군과 경찰을 향해 발신된 각종 통화와, 이 통화의 발신자도 추적할 것입니다. ①을 거쳐, ②를 타고, ③에 다다를 때, 특검은 진짜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기이한, 때론 섬뜩하기까지 한 이 결심의 뒤에 무엇이 있는가. 국정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가. 국정농단 특검 ‘시즌2’가 곧 시작됩니다.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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