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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김주영 칼럼] 팍스아메리카나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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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다극화하는 듯 보이나
中과 갈등에도 미국 파워는 건재
日반도체 견제하더니 이젠 지원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매일경제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끝나고 분리된 세상이 온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균열의 조짐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국-대만의 갈등, 세계 도처의 분쟁까지 미국의 중재자적 파워가 점점 쇠락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세계가 ‘다극화 체제’라는 새 질서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다”고 평가한다.

팍스아메리카나는 진정 종말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패권에 가장 큰 도전은 중국의 부상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며 ‘팍스시니카(Pax Sinica)’시대가 도래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중국의 질주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이 중국 제품에 ‘관세 폭탄’을 투하해 미-중 무역전쟁의 시작을 알렸고, 미래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른바, ‘팍스테크니카(기술패권)’를 놓고 반도체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격돌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제조2025’ ‘인터넷 플러스’를 내걸고 “2025년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긴장한 미국의 타깃이 된 것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다. 미군의 핵무기 통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미국은 화웨이를 미국에서 퇴출시켰다. 여기에 더해, 미국 기술을 이용한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막고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미국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중국 내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화웨이에 이어 최근에는 중국의 동영상 공유 앱 ‘틱톡’이 타깃이 됐다. 틱톡은 미국 인구의 절반가량인 1억 7000만 명이 구독하는 초강력 플랫폼이다. 미국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른바 ‘틱톡 금지법’을 발의하고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미국 내 서비스를 금지하겠다며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와 보복은 기시감이 든다.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자 미국 정부는 일본 반도체 기업들을 덤핑 조사해 압박하고 결국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을 체결하는 한편, 달러 강세를 막기 위해 엔화 가치를 끌어올린 ‘플라자합의’로 일본을 옥좼다. 이후 일본의 반도체는 퇴락의 길을 걷는다. 그랬던 미국이 요즘엔 다시 일본에 반도체 기술 이전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이제이(以夷制夷)처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이용하는 전략이다. 어디든 미국의 견제 대상이 되면 쇠락할 수도, 미국의 필요에 따라 다시 회생할 수도 있다.

팍스아메리카나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 전 미국 상무부 장관의 “대만과 한국에 넘어간 반도체 주권을 미국이 가져와야 한다”는 발언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인텔 CEO 팻 겔싱어는 “20% 수준인 미국의 반도체 제조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화답하고 더 나아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삼성을 제치고) 세계 2위가 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든 한국 앞에 놓인 길은 녹록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국 반도체 산업 제일주의를 내세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동맹에만 너무 안주하면 안 되는 이유다. 절체절명의 시기, 다시 한번 되새길 것은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것이다.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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