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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반세기, 기록의 기억] (120) 삼각지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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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체증 주범으로 전락 ‘해체’…이젠 배호의 노래만 남아

경향신문

삼각지로터리 1971년(위쪽 사진)과 삼각지 2024년 |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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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를 촬영한 사진이지만, 사진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1971년 흑백사진에는 둥글게 도는 고가도로가 보이는데, 가까운 쪽의 도로로는 지면과 연결된 육교를 통해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고 먼 쪽 도로에는 차들이 달리고 있다. 그리고 지상의 넓은 도로에는 버스가 지나고 있다. 2024년 사진에선 신호등이 설치된 넓은 네거리를 사람들이 건너고 있고, 왼쪽으로는 높은 아파트도 보인다. 두 사진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에 있는 삼각지로터리를 북쪽으로 바라보고 찍은 것이다.

로터리란 차량이 교차하는 지점을 원형으로 만들어 신호등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한 교차로를 말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에는 신촌, 청량리, 영등포 등의 부도심에 로터리가 조성돼 있었다. 로터리는 차량이 정차하지 않고 원형 교차로를 돌면서 직진, 우회전과 좌회전, 유턴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교통량이 많아지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서울의 로터리들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삼각지로터리는 여느 로터리와 달리 공중에 뜬 로터리, 즉 로터리와 고가차도를 혼합한 한국 최초의 입체교차로였으며, 차량뿐 아니라 사람도 통행할 수 있었다. 삼각지 입체교차로는 남다른 추진력으로 ‘불도저 시장’이라 불린 김현옥이 1967년 1월에 공사를 시작해서 그해 12월에 완공하였다. 입체교차로를 통해 한강대로와 백범로, 이태원로가 교차했으며, 1974년에는 서쪽의 공덕동으로 가는 백범로에 고가도로를 설치해 경부선 철길을 건널 수 있게 하였다.

입체교차로가 건설될 무렵 배호가 부른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가 히트하면서 삼각지 입체교차로는 더 유명해졌다.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버스들은 서울의 명소인 이곳을 일부러 돌고 갔고, 한 바퀴 돌 때마다 1년을 더 산다는 말에 시골 노인을 태운 관광버스는 기본 7번을 돌고 갔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그러나 입체교차로는 1994년 노후화와 교통량 증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하철 건설로 인해 철거됐으며, 삼각지로터리는 2024년 사진과 같이 평범한 네거리 교차로로 바뀌었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 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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