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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읽는 사람, 우리가 '하이엔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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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예찬] 성인 독서율 최저 시대의 책 읽기

편집자주

매주 출판 담당 기자의 책상에는 100권이 넘는 신간이 쌓입니다. 표지와 목차, 그리고 본문을 한 장씩 넘기면서 글을 쓴 사람과, 책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이를 읽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활자로 연결된 책과 출판의 세계를 격주로 살펴봅니다.

한국일보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 마련된 야외도서관 '책읽는 서울광장'. 6월까지 운영된다. 최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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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율 높다던 그 옛날에도 책 제대로 읽은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최근 만난 한 출판사 대표 말에 시쳇말로 빵 터졌습니다. 하기사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켰을 때 '아마존 킨들로 완독률을 확인해보니 3%도 채 안 되더라'란 얘기가 나왔지요. 애덤 스미스 '국부론'을 완독한 뒤에 자유시장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까요.

청순 발랄 걸그룹 '뉴진스'의 미래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걱정되지만, 그만큼 화제가 되진 않는 독서율 이야기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8일 내놓은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한 해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성인의 비율이 43%로 1994년 조사 시행 이후 최저를 기록했답니다. 초중고생의 독서율이 91.4%에서 95.8%로 오른 것 정도 이외엔 거의 모든 지표가 하락했답니다. 또 한번 출판계의 한숨과 정부 지원 얘기가 거론됩니다.

출판사 대표는 이런 얘기에 묘한 반감이 든다고 합니다. 너무 위축된 이미지여서입니다. 그는 "독서는 옛말로 치자면 '한량 취미', 요즘 말로는 '하이엔드 취미'"라고 강조했습니다. 책 읽기는 예나 지금이나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손가락으로 모든 검색이 가능한 스마트폰 시대를 '촉각의 시대'라 부르면서, 진짜 촉각을 누리는 게 오히려 여유를 상징한다 했습니다. 인플루언서의 스위스 여행지 인스타를 보는 대신 직접 스위스에 가는 겁니다. 독서율이 떨어졌다는 시대에도 각종 유료 북클럽엔 회원들이 몰려들고, 실태 조사에서 고소득자의 독서율이 높게 나온 건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책 읽는 사람부터 스스로 가슴을 쫙 펴고 "우리가 힙한 하이엔드"라고 해봅시다. 앞으로 마련될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이라는 것도 교훈적 이야기보다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싶습니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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