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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범죄도시4’ 흥행, 스크린 독식 덕?…“다른 영화 볼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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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화 ‘범죄도시4’. ABO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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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직장인 박아무개씨는 지난 일요일(28일) 오후 전주에서 영화 ‘챌린저스’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범죄도시4’를 봤다. ‘챌린저스’는 늦은 밤에나 상영이 잡혀있고 고사동 일대 모든 극장은 ‘영화의 거리’라는 말이 무색하게 ‘범죄도시4’만 상영하고 있었던 탓이다. 서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쿵푸 팬더4’가 인기라고 해서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 둘과 주말 극장 나들이를 준비했던 주부 최영원씨는 적당한 상영시간을 찾지 못해 아이들의 원망을 뒤로 한 채 관람을 포기해야 했다.



‘범죄도시4’가 코로나 기간 가라앉아 있던 스크린독과점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24일 개봉한 ‘범죄도시4’는 관객 동원 460만명을 넘긴 29일까지 상영점유율 81~82%, 좌석점유율 85%를 유지하고 있다.(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상영점유율은 전체 영화 상영횟수 가운데 이 영화의 상영이 차지하는 비중, 좌석점유율은 극장 전체 좌석 수 가운데 해당 영화에 할당된 좌석 수의 비율은 뜻한다. 상영점유율보다 좌석점유율이 더 높은 건 다른 영화보다 ‘범죄도시4’에 더 좌석이 많은, 큰 상영관을 배치했다는 의미다. 2019년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일으켰던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기록했던 초유의 영화관 ‘싹쓸이’와 같은 수준의 좌석점유율이다.



한겨레

30일 CGV동대문 상영시간표 화면 갈무리. 이른바 황금시간대인 저녁 6시~9시 사이는 모든 스크린을 ‘범죄도시4’가 점유하고 있다.


비슷한 양상처럼 보이지만 개봉 당시 비난받았던 ‘엔드게임’보다 ‘범죄도시4’의 스크린 독점은 더 문제가 크다. 바로 좌석판매율 때문이다. 배정된 좌석 수에서 실제 관객수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좌석판매율이 개봉 5일간 ‘엔드게임’은 평균 60%대, 일일 최고 77%에 달했지만 ‘범죄도시4’는 평균 30%대다. 가장 많은 관객이 온 날도 50%에 미치지 못했다. 실제 수요보다 훨씬 더 많은 상영관을 점유한 채 사실상 관객들의 선택권을 빼앗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도시의 스크린 독점은 코로나 이후 다른 천만 영화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서울의 봄’은 개봉 5일간 좌석점유율은 60%대 초반을 유지했다. 2주차에 역주행이 일면서 좌석판매율은 되레 올라갔다. 지난 2월 개봉한 ‘파묘’는 좌석점유율 50%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역시 좌석판매율은 2주차에 더 높았다. 두 영화 모두 관객들의 호평이 더 많은 관객을 불러모았다.



‘범죄도시’ 2∙3편은 어떨까. 연휴 등을 낀 개봉 초 좌석점유율은 모두 70% 중반대로 4편 수준까지 높지는 않았다. 70%대도 과점 논란에서 자유롭기는 힘들지만 두편이 개봉했을 당시는 코로나 여파로 극장 관객이 급감했던 상황이라 극장업계뿐 아니라 제작자와 배급사들도 범죄도시의 흥행을 응원했다. 쪼그라든 영화산업의 크기를 회복하는 게 시급하다는 데 영화계 전체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범죄도시 2∙3편에 흥행 몰아주기가 반복되자 4편 개봉 때는 한국영화들이 개봉을 회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달 초부터 다음 달 15일 ‘그녀가 죽었다’가 개봉할 때까지 한달 반 동안 한국 대중영화의 개봉 목록에는 ‘범죄도시4’가 유일하다. 사전 예매율이 90%까지 치솟은 배경에는 영화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조건도 작용한 셈이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영화 배급을 해오며 ‘영화 배급과 흥행’을 쓴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지금 상황은 특정 영화의 관객 독점이 아니라 멀티플렉스의 관객 독점”이라고 하면서 “코로나 이후 멀티플렉스들이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촘촘한 그물에 관객을 가두듯이 5분, 10분 단위로 ‘범죄도시4’ 상영시간을 배열하면서 치킨게임식 경쟁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범죄도시4’ 외에는 상영관을 열지 않으니 다른 영화들은 이 시기에 아예 개봉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산업의 활기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좀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스오피스 경제학’을 쓴 문화경제학자 김윤지 박사(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는 “천만영화는 스크린독과점 논쟁을 낳으면서 반대로 투자자들을 영화산업으로 끌어들이는 동전의 양면 같은 효과가 있다”면서 “여전히 한국 영화산업이 호시절의 활기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제작사나 배급사와 극장간 합의를 통해 좀 더 합리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게 바람직하다”하다고 말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극장 독과점 문제 해결을 위해 배급사와 극장간 협의체를 만들기 위한 논의를 최근 시작했다. 현재 국외에서는 강력한 법적 규제(프랑스)나 극장과 배급사간 합의(일본), 극장·배급사간 수익 배분 변동시스템(미국)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극장의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하고 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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