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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전세사기 특별법 ‘선구제·후회수’ 개정부터 협치하라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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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1대 국회 임기 종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폐기될 위기에 놓여 있다며 전세사기특별법개정을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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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훈 | 변호사·참여연대 운영위 부위원장



지난해 5월 말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이 1만5433명(4월17일 기준)이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5월까지 피해자가 3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법 제정 당시부터 금융 지원 대책 중심의 정부 구제책으로는 피해 회복이 제대로 안 된다며 특별법을 개정할 것을 호소해 왔다.



이제 야당 주도로 ‘선구제·후회수’ 방안을 포함한 특별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해 5월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시민들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담 이후에도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이 계속 반대한다거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여부는 총선 이후 시민들이 원하는 여야 협치가 가능할 것인지를 알게 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선구제·후회수’ 방안을 시행하려면 전세사기 피해자 3만6000명에 피해자 1인당 평균 보증금 1억4000만원을 곱해 모두 5조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별법 개정을 반대하기 위한 논거로 보이는 이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틀렸다.



첫째, 선순위 임차인은 주택을 경매로 매입했다가 파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을 요청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선구제·후회수’에 투입될 소요 예산은 후순위 임차인에 대해서만 추산하는 것이 옳다.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전체 전세사기 피해자 등 중 후순위 임차인은 50%다.



둘째, 후순위 임차인 중에서도 최우선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임차인들에게 최우선변제금 상당액으로 채권을 매입해주는 경우, 세금 투입이 필요하다. 나머지 자금은 투입 후 회수가 된다. 한국도시연구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후순위 임차인 중 약 70%의 임차인이 최우선변제금 상당액의 재정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다. 따라서 전체 전세사기 피해자 중에는 약 35%(후순위 임차인 비중 50% × 최우선변제금 대상자 비중 70%)를 위해 재정 투입이 소요될 수 있다. 정부 발표 수치(평균 보증금, 예상 피해자 수)와 민간 연구소 조사 결과 등을 이용해 내년 5월까지 최대 세금 투입액을 추산하면 약 4998억원(평균 보증금 1억4000만원 × 최우선변제금 비율 30% × 예상 피해자 수 3만4000명 × 소액임차인 아닌 후순위 임차인 비중 35%)이 필요하다. 나머지 투입 금액은 정부가 결국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동안 정부는 ‘선구제·후회수’ 방안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다른 사기범죄 피해자에게 예산을 지원해준 선례가 없고 형평에도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전세대출과 보증을 무리하게 확장해온 정책 실패가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 발생의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정부 책임이 없는 다른 사기 피해자 구제와 비교할 문제가 아니다.



미국 정부는 무분별한 후순위 담보대출 확대를 방치하다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었다. 이때 미국 정부는 국책 모기지업체인 프레디맥, 페니메 등을 통해 매입한 부실 저당 채권을 이용해 담보 주택들을 대규모로 취득한 후 수년간 보유하면서 순차적으로 시장에 주택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극복한 바 있다. ‘선구제·후회수’ 방안과 유사한 대책이다. 올해 예산만 612조원인 한국에서 5000억원 정도 세금을 쓴다고 해서 무리한 예산 편성은 아니다. 또 주택도시기금 지급준비자금(불용액)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0조원이 넘는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2030 청년층이다. 이들의 소중한 청춘기를 전세금 회수로 몇 년씩 소모하게 하고 이들을 파산, 회생으로 내몰아서야 되겠는가. 또한 이 사태를 오래 끌수록 소형주택 전세시장은 가라앉고 대규모 피해로 인한 시장 불신은 걷히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수용하고 신속하게 피해구제 정책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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