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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주관증권사의 구멍 난 기업 실사…법적 책임 없어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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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해 8월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거래소 서울 사옥에서 열린 파두의 상장 기념식. 한국거래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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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의 기자가 작성하는 기사는 사내 ‘게이트키핑’ 과정을 거친다. 부서장과 편집회의 논의를 통해 취재 방향 및 기사 구성 등을 조율하고 최종 생산물인 콘텐츠가 대중에게 노출된다. 국내 증시에서 신규 상장사들의 문제점이 연이어 터지는 건 바로 이 같은 ‘문지기’가 제 역할을 못 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비유하면 게이트키핑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은 기사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신규 상장의 문지기 구실을 하는 건 증권사들이다. 상장 후보군인 유망 기업 발굴부터 기업 실사, 기업가치(공모가격) 산정, 공모주식 배정, 상장 후 시장 조성 등 기업공개(IPO)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게 신규 공모시장의 주관 증권사다. 문제는 상장 절차의 가장 앞단에 있는 문지기인 대표 주관회사 등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흡한 제도 탓이 크다. 상장 예정 기업의 가치 평가와 투자자 정보 제공의 뼈대가 되는 기업 실사가 대표적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대표 주관사의 기업 실사 지침(금융감독원의 금융투자회사 기업실사 모범규준 등)은 법적 책임은 없는 참고자료 수준에 그친다. 반면 기업공개 강국인 미국은 상장 주관사의 사후 법적 책임이 무거운 까닭에 기업 실사를 허투루 하기 어려운 구조다.



홍콩 역시 중국 내륙의 부실기업 상장 사태 등을 계기로 한국의 대표 주관사 격인 전문 금융투자업자(스폰서)의 기업 실사 및 공시 의무 등 행위 규제를 강화하고 법적 책임을 부여해 비우량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 한국처럼 신규 상장 기업이 실적 전망 등을 장밋빛으로 뻥튀기해 애먼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으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처럼 ‘문지기’의 역할과 책임이 낮다 보니 증권사들도 실무에서 전문성 확보나 투자자 보호 등에 무게를 두기보다 저가 수수료 경쟁을 벌이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여기에 공모가격 산정, 공모주 배정 등은 정부 규제가 주요국보다 외려 더 깐깐한 터라 증권사가 자체 역량을 높일 유인도 낮은 편이다.



신생 기업의 상장 문턱을 낮춰주는 현행 제도에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수익성은 낮지만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의 상장 기준을 완화해 주는 ‘기술 특례 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 수는 2005년 제도 도입 이래 지난달까지 214개다. 파두, 시큐레터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금융법연구센터장은 “대표 주관사의 제도적 책임을 강화해 증권사들이 제값 받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도 이제는 기업공개 시장의 양적 팽창보다 질적 고도화에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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