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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뉴욕 3부작’ ‘달의 궁전’... 美 문학계 거장 폴 오스터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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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폴 오스터(77)가 폐암 합병증으로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 등 외신이 보도했다. 소설 ‘뉴욕 3부작’, ‘달의 궁전’을 비롯해 산문 ‘빵 굽는 타자기’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다. 사진은 2006년 10월 아스투리아스 왕자 문학상 수상을 위해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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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계의 수퍼스타’로 불린 소설가 폴 오스터(77)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뉴욕 브루클린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사인은 폐암 합병증으로 알려졌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일 뿐 아니라 에세이스트·시인·번역가·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한 다작가(多作家). 대부분 작품이 우리말로 번역돼 한국 독자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오스터는 1947년 미 뉴저지주(州) 뉴어크 출생으로,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미 컬럼비아대에 입학해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1970년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1974년 뉴욕에 돌아오기 전까지 파리에서 프랑스 시를 번역했다. 프랑스 인문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이때 파리 거주 경험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오스터를 ‘유럽인의 영혼을 지닌 미국 작가’로 부르기도 한다. 오스터는 소설 데뷔작 ‘스퀴즈 플레이’(1982)를 시작으로 198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NYT는 오스터를 “뉴욕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이자 1980~1990년대 미 브루클린 문학의 수호자”라고 평가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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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을 대표하는 작가로 만든 1987년 작품인 '뉴욕 3부작' 원서 표지. /FABER ET FABER


1987년 출간된 소설 ‘뉴욕 3부작(The New York Trilogy)’이 그의 대표작. 어느 날 탐정 소설가에게 잘못 걸려 온 전화 한 통으로 이야기의 여정이 시작된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 등 연작소설 세 편은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추리적 기법으로 풀어낸다. 탐정·미스터리 장르의 포스트모던적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 소설 ‘달의 궁전’(1989), ‘우연의 음악’(1990), ‘거대한 괴물’(1992), ‘공중 곡예사’(1994) 등이 유명하다.

‘빵 굽는 타자기’(1997)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그의 산문집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원제는 ‘Hand to Mouth’. 직역하면 손에서 입으로, 즉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산다는 뜻. 부제는 ‘젊은 날의 실패 연대기(A Chronicle of Early Failure)’다. 이 책에서 오스터는 자신의 문학적 자양분은 ‘가난과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열 살 때 돈 때문에 불화하는 부모를 보며 ‘돈 따위에 연연하는 자본주의형 인간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탐정소설을 써 떼돈을 벌어보려고 요령도 피웠다. 소설 ‘스퀴즈 플레이’가 겨우 900달러 헐값에 팔려 그의 밥줄이 돼 준 일화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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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출간된 폴 오스터의 대표작 표지. 왼쪽부터 '뉴욕 3부작', '달의 궁전', '빵 굽는 타자기'.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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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가정사에는 비극이 많았다. 2022년 4월 그의 아들 대니얼(44)이 뉴욕 지하철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대니얼은 오스터의 손녀이자 자신의 딸인 루비 사망 사건과 관련,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였다. 오스터는 과거 소설을 통해 마약 중독자 아들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당시 아들 사망에 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국내 애독자 팬이 많다. 서른 권 가까운 저서 대부분이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출간됐다. 2017년 작품인 ‘4321′이 국내에 지난해 11월 소개됐다. ‘4321′을 번역한 김현우 번역가는 “현실의 삶과 가능성으로서의 삶이 공존하고 뒤섞이는 내용이다. 오스터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주제인데 이를 전면에 가져와 작정하고 다룬 ‘대작’의 느낌이 드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김연수 소설가는 “오스터는 윌리엄 포크너, 어니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등 전통적인 미국 문학의 맥을 잇는 작가였다”며 “1980~199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만큼 1960~1970년대생 한국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많이 미친 작가”라고 했다. 마지막 작품은 지난해 출간된 ‘바움가트너(Baumgartner)’다. 아직 국내에는 번역·출간되지 않았다.

각국 독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굵직한 문학상과는 가깝지 않았다. ‘거대한 괴물’로 199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마지막 작품인 ‘4321′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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