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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축소 신고’ 미분양 통계로 정책 짜나…국토부, 조사 방식 안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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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분양 단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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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지난해 주택 공급 통계를 19만여건 누락해 정정한 일을 계기로, 미분양 통계 부실 문제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길어지고 있는데 미분양 현황이 실제보다 축소 신고돼 정부가 부정확한 통계를 기반으로 정책을 생산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 통계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부는 통계의 일관성을 이유로 조사 방식 개편에 부정적이다.



1일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3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4964호다. 전달(6만4874호)보다 0.1% 증가한 규모다. 이 가운데 ‘악성 미분양’이라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1만2194호다. 전달(1만1867호)에 견줘 2.8% 늘었다. 지난해 8월부터 8개월 연속 증가세로, 침체된 부동산 시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장에선 실제 미분양 주택 규모가 통계 수치보다 더 클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전국 미분양 규모가 10만호를 웃돌 것이란 추정도 있다. 김형범 대한주택건설협회 정책관리본부장은 “1998년 외환위기 때나 2009년, 2014년 등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았을 때 정부가 미분양 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을 준다고 하자 감춰진 미분양 주택이 신고되면서 2배 넘게 증가했다”며 “최근 업계 분위기와 과거 사례를 종합하면 보수적으로 봐도 미분양이 10만호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정이 나오는 건 현재 정부의 공식 통계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형태로 작성되고 있어서다. 미분양 집계는 사업장(건설사)의 자발적인 신고에 기반해 이뤄진다. 외부에 미분양 규모가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건설사 등은 미분양 ‘축소 보고’를 할 유인이 큰 구조인 셈이다. 신고 관련 법적 근거도 없는 탓에 사업장에서 자료를 내지 않거나, 속여서 제출하더라도 별다른 벌칙도 받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미분양 통계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을 때마다 신뢰성 논란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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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으로부터 미분양 현황을 직접 제출받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미분양 문제가 심각한 대구의 한 구청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미분양 수준이 그대로 공표되면 영업에 애로가 생기는 것은 물론 이미지도 타격을 입는다고 여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축소 신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취지다. 지난해 서울시가 국토부에 ‘미분양 신고 의무화’를 담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토부는 미분양 조사 방식 개편에 소극적이다. 김헌정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미분양 통계가 보수적으로 산출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과거 시계열을 활용해 경향성을 비교하려면 지금 같은 집계 방식을 쓸 수밖에 없다”고만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선 국토부의 이런 태도에는 건설업계의 이해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드러낸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분양 현황 신고를 의무화할 경우 업체에 부담이 크다는 국토부의 의견을 구두로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부동산학)는 “업체 신고에만 의지하면 시장이 안 좋을 때 통계가 언제든 왜곡될 위험이 크다”며 “민간에 미분양 신고를 의무화하기 어렵다면, 지자체나 정부에서 현장 조사 등 모니터링이라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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