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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유명 유튜버 운영 카페에 찾아간 팬…계단에서 굴렀다, 누구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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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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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지만 하늘만큼은 쾌청한 날이었다. 6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유튜버의 팬이었던 ㄱ씨는 그가 카페를 열었다는 소식에 부푼 마음을 안고 찾아갔다. 유튜버는 가게에 없었다. 잠시 후 다시 가게를 찾을 요량으로 2층에 있는 카페를 나와 철제 계단을 내려가던 길이었다.



‘미끄러울 수도 있겠다.’ ㄱ씨가 계단에 깔린 초록색 고무매트를 보며 했던 생각이다. 네 번째 계단을 내려갈 때쯤 오른발을 내딛는 순간, 무언가 걸린 느낌이 들었다. ㄱ씨는 “땅으로 꺼지듯” 굴러떨어졌다. ㄱ씨 뒤를 따라 내려오던 지인은 “잠시 미동 없이 엎드려 있어 커피를 내팽개치고 일단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고 했다. ㄱ씨의 오른쪽 발목이 꺾여 있었다. 왼쪽 무릎 밑은 심한 열상으로 피부가 파여있는 상태였다. 응급수술로 30바늘을 꿰매 봉합하고, 발목은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ㄱ씨는 103일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 붉은 상처가 크게 남았다.



계단에서 넘어지면, 넘어진 사람의 책임일까 가게 사장의 책임일까. ㄱ씨는 같은 해 9월 카페 운영자인 유튜버 ㄴ씨를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카페의 출입은 오로지 철제 계단을 통해서만 가능했는데 오염 물질을 털어내는 용도로 고무매트를 계단 위에 설치해 두고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ㄱ씨 주장을 들어보면, 고무매트는 상대적으로 크고 돌출된 형태의 원형 타공이 불규칙적으로 배열돼 있어 신발 밑창이 끼일 수 있는 구조였다. 특히 고무매트를 계단에 맞춰 작은 크기로 재단하는 바람에 쉽게 들릴 정도로 무게가 가벼워 사고 위험이 커졌다는 점을 ㄱ씨는 지적했다. ㄱ씨는 주의사항이나 안내표시조차 없었기 때문에 카페 운영자인 ㄴ씨의 과실이 사고 발생의 원인이 됐다는 점 등도 법원에서 함께 주장했다.



ㄴ씨는 피해자의 부주의 탓이라며 맞섰다. ㄱ씨가 손잡이를 잡고 내려왔다면, 즉 더 주의했더라면 미끄러지지 않았을 것이므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동안 ㄱ씨 밖에 다친 사람이 없었고, 주변 상인들의 얘기를 종합해도 이런 사고는 극히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



ㄱ씨와 ㄴ씨 모두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판례를 제시했다. ㄱ씨는 2019년 수원지법 안양지원의 판결문을 내놨는데, 당시 법원은 민법 제758조(공작물 등의 점유자·소유자의 책임)를 들어 “계단을 사실상 지배하면서 이를 보수·관리할 책임이 있는 운영자가 그 책임을 소홀히 했다”며 피해자의 재산적·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노래방과 연결된 계단을 내려가다 발판에 미끄러지며 오른쪽 발목이 꺾이는 사고로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으로 이번 사고와 구조가 거의 같다.



ㄴ씨가 제시한 판결문은 정반대 결론을 내린다. 지난 2017년 서울중앙지법 판결을 보면, 법원은 건물 후문 계단에서 넘어져 다친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손잡이를 잡고 이동했다면 넘어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피해자 외 계단에서 다친 사람은 없었다”며 ‘계단에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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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계단을 내려가던 ㄱ씨의 신발에 걸린 고무매트 사진.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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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나 음식점 등 사업장에서 사고는 흔히 벌어지지만, 그 책임을 가리는 일은 ㄱ씨와 ㄴ씨의 첨예한 갈등에서 볼 수 있듯 쉽잖은 일이다. 구체적인 사고 상황과 함께 방문자 또는 일반 시민이 시설물의 안전에 주의하는 것만으로도 사고 예방이 가능한지, 사업주 등 관리 책임자는 어떠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등이 ‘개별 사고’마다 천차만별인 탓이다.



사회 분위기와 법원의 태도 또한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사업주의 책임을 묻는 데 소극적이었던 법원 분위기가 최근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안전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영향 때문이다. 손해배상 소송 전문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는 “사업장 내의 사고는 당시 현장의 환경에 따라 변수가 매우 많은 특징이 있어 증거를 잘 수집하는 것이 관건”이라면서도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비슷한 손해배상 소송 사례가 많아지면서 법원에도 판단 기준과 관련한 데이터 자체는 많이 쌓인 상태”라고 말했다.



손님 ㄱ씨와 사장 ㄴ씨의 다툼은 진행 중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1월19일 ㄱ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고무매트에 하자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오르내리며 잡을 수 있는 손잡이도 설치돼 있었기 때문에 미끄러질 위험이 크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ㄱ씨 쪽은 “고무매트가 보행을 방해할 것이라는 점은 피해자가 예상하고 대비할 수 없었던 부분”이라며 항소를 제기했다. 유튜버와 팬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어긋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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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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