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7 (금)

대중문화 전문가들 ”하이브 몸집 불리기의 부작용, 민희진 사태 불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중문화계 전문가들이 국내 최대기획사 하이브와 자회사 민희진 어도어 대표 간 내홍에 대한 긴급 진단에 나섰다. 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선 7명의 전문가들이 문화연대와 함께 ‘하이브-어도어 경영권 분쟁,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사태가 “K팝 제작 시스템과 문화산업 환경에도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원옥 문화사회연구소 대표이사, 이동연 문화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강혜원 성균관대학교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이재경 건국대학교 교수(변호사), 이종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외래교수, 임희윤 음악평론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이 지목한 하이브 내홍의 핵심 원인은 ‘수직적이고 배타적인 멀티레이블 지배 구조’이다. 멀티레이블은 모회사인 대형 음반기획사 산하에 다양한 중·소형 음반기획사를 흡수해 레이블(자회사)로 거느리는 형태다. 유니버설뮤직, 워너뮤직, 소니뮤직 등 대형 글로벌음반사들도 이 방식으로 몸집을 불려나갔다. 하이브는 특히 본사는 홍보와 법무, 산하 국내외 11개 레이블은 개별적인 콘텐츠 제작을 전담하는 구조다. 당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급속히 커지는 K팝 시장에서 다양한 그룹 포트폴리오를 갖추겠다며 이런 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멀티레이블에는 죄가 없지만, 하이브의 운영방식에 부작용이 생겼다’고 했다. 토론 발제를 맡은 이동연 문화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번 분쟁 사태를 초래한 문제점은 레이블이 하이브라는 경영지배구조 안에서 수직계열화되어 있다는 점”이라며 그 결과 ‘각 레이블이 모회사 안에서 협업보단 배타적 경쟁에 더 익숙해졌다’고 지적했다. 민 대표가 제기한 ‘하이브 산하 타 레이블 그룹의 뉴진스 표절’ 문제 또한 이런 수직적 지배구조에서 모회사가 안정적 매출을 올리기 위해 콘텐츠를 재생산하는 과정의 부작용이란 것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 산업은 초창기부터 창작자가 회사를 창립한 뒤 경영과 창작을 동시에 하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 상황은 국내에 없던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경영진 내부의 역할 분담, 성과나 자본 분배를 둘러싼 논쟁이 충돌한 “과도기적 문제 사례”란 것이다.

지난 25일 민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저격한 K팝 산업의 ‘과도한 상업성과 성과주의’도 조명됐다. 민 대표는 당시 ‘음반 밀어내기’ ‘포토카드’ ‘무늬만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등 K팝 산업 내부 문제를 하이브가 앞장 서서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임희윤 평론가는 “최근 초등학생들이 포토카드 중 구하기 힘든 희귀템을 ‘트리마제(고가 고급 아파트)’에 비유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 K팝 성과주의가 아이들 (팬) 사이에서조차 모방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강혜원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는 현재 팬덤 소비를 통한 K팝의 경이로운 앨범 판매 기록이 정말 즐거움에 의한 것인지 따져봐야한다고 했다. “국제적으로 K팝이 성공하면서 앨범 판매량이 5~6배 늘었다. 하지만 밀리언셀러 같은 앨범 판매량이 자연스러운 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수백만원 어치 앨범을 사야 팬사인회를 가야 하는 문화가 심각해진 상황”이라며 “팬들이 이걸 위해 듣지도 않는 앨범을 사면 죄책감이 생기니 관련 기관에 기부하는 식의 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현 가요계가 아이돌 그룹들이 주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인지 진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종임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는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 돌봄에서 벗어나 오디션 보고 기획사 하에서 자라는 아이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나 생각이 든다”며 “‘방탄소년단 아버지’(방시혁 하이브 의장), ‘뉴진스 맘’(민희진 어도어 대표)으로 (소속사와 가수 관계를) 가족관계에 비유하지만, 실질적으로 이슈가 발생했을 때 부모 역할을 잘 하는지는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차후 민희진 대표와 하이브 양측 간 법률 공방 과정에 대해선 ‘경영권 찬탈 사전 모의’ 여부가 쟁점이 될 거란 예측이 나왔다. 이재경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결국 대표이사 해임의 법률적 정당성을 두고 법적 분쟁이 벌어질 것”이라며 “법률적으로 본다면 업무상 배임 죄와 관련해 ‘사전 모의’를 했다는 것으로 처벌할 규정은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룹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회사 탈취 시도와 관련한 배임 의혹에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나눈 카톡을 공개하고 있다./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수정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