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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사설]野 ‘채상병특검법 강행’ 與 ‘거부권 예고’… 1시간 만에 깨진 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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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재적 296인, 재석 168인, 찬성 168인, 반대 0인, 기권 0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4.5.2/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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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이 어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특검법이 상정되자 표결 강행에 항의하며 퇴장했고, 김웅 의원만 남아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앞으로 21대 마지막까지 모든 국회 의사 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고 밝혔고, 대통령실은 “나쁜 정치에 엄중 대응하겠다”며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여야 합의로 이태원 특별법을 처리한 직후 이뤄진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단독 처리는 유감스럽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이래 지난달 3일로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하긴 했다. 하지만 4·10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동을 계기로 모처럼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던 시점에서 나온 거대 야당의 강행 처리는 아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채 상병 특검법은 정상적이라면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에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논의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최근 공수처는 이 사건 연루 의혹을 받는 핵심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어서 언제 수사가 마무리될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이번 특검법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적지 않다.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한 민감한 사안인데도 해병대 수사단의 기초수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에 관여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다 그에 항의하는 수사단장을 항명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 핵심 수사 대상이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해 도피성 출국 의혹마저 샀다. 국민의 3분의 2가 특검법에 찬성한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그런 정부의 무리수에 대한 불신 탓이 크다.

윤 대통령으로선 여당의 총선 참패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거부권 행사를 고심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여당 내에서조차 채 상병 특검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데다 거부권 행사 이후 국회의 재의 투표에서 여당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어제 표결에 소속 의원 1명이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21대 막판까지 힘자랑으로 몰아붙인 야당은 우리 정치를 더욱 삭막하게 만든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다만 정부여당도 펄쩍 뛸 일만은 아니다. 채 상병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채 상병 특검법 강행 처리 1시간 전 이뤄진 이태원 특별법의 합의 처리도 야당의 강행과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맞서다가 한발씩 물러선 결과다.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숨진 참담한 사건에 1년 반이 걸렸다. 이런 정치의 실패에 국민은 한숨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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