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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글로벌 포커스] 독재자는 희화화를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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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북한은 지난달 새로운 김정은 찬양 가요 ‘친근한 어버이’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제복을 입은 북한 군인 수천 명과 당국자가 출연해 군가식 멜로디에 맞춰 합창한다. 같은 날 미국 유명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도 마침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과연 누가 김 위원장을 교주처럼 받드는 이 행태를 비웃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래야 한다. 희화화는 독재자가 두려워하는 무기다.

1940년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위대한 독재자’는 아돌프 히틀러를 희화화했다. 미국이 세계대전 참전 전이었고, 고립주의적인 ‘아메리카 퍼스트 운동’은 중립성을 외치고 있었다. 미국의 영웅 비행가 찰스 린드버그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자 이 운동은 미국 전역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운동은 사실 반전과 반유럽 시각으로 알려졌지만, 동시에 히틀러와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에 공감했다. 독재를 동경했고 당시 진보 성향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반대했다.



북한에 김정은 찬양 가요 등장

채플린, 독재자 히틀러 희화화

레이건은 유머를 무기로 활용

중앙일보

북한, 김정은 찬양 새 선전가요 '친근한 어버이' 공개 [사진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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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는 히틀러를 동경이 아닌 비웃음의 대상으로 희화화했다. 특히 히틀러로 분장한 채플린이 이탈리아 독재자와 처음 만나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 이탈리아 독재자는 누가 봐도 무솔리니의 모습이었다. 채플린은 영화에서 무솔리니 캐릭터의 의자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 낮게 만들어 마치 히틀러가 무솔리니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러한 슬랩스틱 코미디는 많은 미국인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이 영화는 후에 할리우드에서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로 올랐으며 여전히 코미디 장르의 클래식으로 남아 있다. 채플린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상대로 유화정책을 추진했다. 영국 정부는 독일 나치 정권의 기분을 살피느라 채플린의 영화 상영을 금지했다. 영국의 나치 유화정책은 기억에서 잊혔지만 여전히 부끄러운 역사다. 1940년 영화가 개봉했을 때 영국은 독일과 전쟁 중이었고, 영국 관객은 이 영화를 영국의 적국을 비웃음거리로 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독재자를 자기 검열하는 민주주의 사회는 역사상 평탄하지 못했다. 코미디가 검열 대상이 되면 그 정부는 미시적인 문제에 천착한다. 진보 정부와 학자들도 북한 정권과 관련해 비슷한 실수를 한다. 외교적 진전을 위해서는 독재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는 듯하다. 직업 외교관은 그러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 사회는 독재자의 사이버 교주 같은 행태를 자유롭게 비웃을 수 있어야 한다. 유머는 자유 사회를 강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좋은 사례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는 직업 코미디언이었다. 지금은 푸틴의 잔혹한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독립투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머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한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탈출을 제안했을 때 그는 매우 유머 있게 세상에 외쳤다. “내가 필요한 건 포탄이지 누군가의 차를 빌려 타는 게 아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자신을 코미디 소재로 삼은 미국 코미디언들을 공격함으로써 다른 독재자들과 유사성을 보였다. 진짜 민주적인 지도자는 유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1980년대에 학생 신분으로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했을 때 당시 폴란드는 철의 장벽 뒤에서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북한 대사관 앞을 지나가다가 새로 건설된 수력 발전소 홍보판을 봤다. 그 누구도 그 그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길 끝에는 미국 대사관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당시 유명한 만화가 허브 블록이 레이건 대통령을 놀리는 풍자 일러스트레이션이 북한 대사관의 발전소 홍보판 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걸려 있었다. 그 앞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어떤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지도자를 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동경하고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한 번도 유머의 소재가 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정치적 반대파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무기로, 또는 공산주의의 도덕적 실패를 꼬집기 위해 유머를 활용했다. 민주주의가 독재자에 맞서는데 유머가 중요한 무기로 사용되긴 했지만, 여느 무기 체계가 그러하듯이 유머도 제약과 리스크가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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