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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시시비비]데이터 생명줄 끊기는 이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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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인공지능(AI) 시대 통신회사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데이터 때문이다. 휴대전화, 인터넷, TV 등에 가입한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면 기업들의 마케팅뿐 아니라 사업전략에 도움이 된다. 다양하게 형성된 데이터는 AI의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데이터를 먹고 자라나는 AI 특성상 학습에 필요한 정보가 많을수록 보다 정확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이동통신사들이 기존의 네트워크 위주의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AI 기업을 지향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데이터는 이통사로 인재를 끌어들이는 도구이기도 하다.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이 지난달 인재 확보를 위해 실리콘밸리를 찾았을 때 강조했던 말도 데이터였다고 한다. AI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인재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데이터이고, 이는 이통사들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어필한 것이다. 행사 참석자들이 "LG유플러스가 통신회사기 때문에 AI 기술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풍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데, 같은 맥락이다.

곧바로 다가올 현실은 그러나 이런 구상과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에 우리 이통사들의 개인 정보는 활용보단 꽁꽁 묶어두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초 SK텔레콤 가입자 5명은 회사를 상대로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르면 이달 중 최종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법원이 심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1·2심 재판부가 모두 원고 측 승소로 판결한 만큼 SK텔레콤에 불리한 쪽으로 판결이 굳어질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1·2심에서 이통사가 패소한 건 같은 법안에 있는 모순된 조항 때문이다. 정부는 2020년 데이터산업 활성화를 위해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을 마련한 바 있다. 개인정보의 활용범위를 넓히기 위해 이를 가명처리해 산업뿐 아니라 연구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 28조 2항에 ‘개인정보처리자는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정보주체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같은 법 37조 1항엔 ‘자신의 개인정보 처리의 정지를 요구하거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와 있다. 비식별 정보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면 SK텔레콤 같은 이통사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 한쪽에선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놓으면서도 다른 쪽에선 비식별된 개인 정보 생성을 막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2심 결과가 최종판결까지 이어진다면 승소한 쪽이 나서 가입자들의 가명정보 형성과 활용을 가로막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이통사 입장에선 그야말로 재앙이 된다. 데이터 활용이 막힌다면 현재 가진 개인정보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고, 해외 AI 인재들을 영입해 사업을 강화하려는 시도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섣불리 상고 기각을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1·2심과 달리 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새롭게 판단될 사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법 문항 해석에만 매달리지 말고 글로벌 산업 흐름을 살펴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재판부는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일권 산업IT부장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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