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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日 시부야에 버려진 ‘앨범쓰레기’...해외까지 번진 K팝 고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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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까지 퍼진 K팝 업계 고질병

조선일보

지난 30일 일본 도쿄도 시부야 거리에 버려졌다고 X를 통해 퍼진 세븐틴 새 앨범 사진. 일본 네티즌은 해당 사진 게시물에 “유감스럽게도 K팝 팬덤에선 익숙한 장면”이라고 적었다. /X(구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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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길거리에 세븐틴의 새 앨범이 상자째 폐기되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심하네요….”

소셜미디어 엑스(구 트위터)에 한 일본인 네티즌이 지난 30일 올린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도쿄도 시부야의 한 백화점 인근 공원에 하이브 산하 보이그룹 세븐틴의 베스트앨범(기존 히트곡을 모은 앨범) ‘17 IS RIGHT HERE’가 종이 상자 수십 개에 담긴 채로 버려진 모습이 담겼다. “’마음껏 가져 가세요’란 메모와 함께 버려졌다” “지금은 전부 쓰레기봉투에 담겨 치워졌다” “투기 장소는 사유지로, 쓰레기 투기 감시 카메라와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등 여러 목격담 게시물도 잇따랐다. 이 앨범 발매 하루 만의 일이었다. 시부야는 도쿄 내에서 K팝 성지로 꼽힌다. 대형 음반점 타워레코드는 5층을 K팝 전용 층으로 운영 중이다.

앨범을 대량으로 사고 버리는 문제는 ‘K팝의 고질병’으로 지적된다. 새 앨범이 이처럼 대량으로 버려지는 이유는 이른바 ‘미공포’와 ‘사인회·팬미팅 응모권’ 때문이다. 미공포란 미공개 포토카드의 줄임말. 앨범을 사면 지급받는 ‘랜덤 포토카드’를 말한다. 포함된 속지 구성을 달리한 앨범 종류 뿐 아니라 구매처가 어디냐에 따라서도 미공포 형태, 지급 숫자가 랜덤으로 달라진다. 좋아하는 멤버 사진이 나올 확률을 높이려고 여러 구매처를 전전하며 앨범을 수십장씩 구입한다. 한국소비자원 지난해 설문에 따르면 K팝 음반 구매자 중 절반 이상인 52.7%가 “포토카드 등 굿즈를 모으려고 앨범을 샀다”고 답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


앨범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K팝 팬들이 2021년 결성한 ‘케이팝포플래닛’은 앨범을 다량 구매하더라도 실물 앨범은 원하는 만큼만 받아가는 ‘그린 옵션’을 달라고 음반 기획사에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번 세븐틴 앨범도 랜덤 포토카드가 든 형태로 발매됐다. 발매 첫날에만 226만장이 팔렸다. K팝 베스트앨범 중 최다 판매 기록이다. 소셜미디어에선 앨범 포장을 뜯고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포토카드만 골라내는 일명 ‘앨범깡’ ‘포토깡’ 후기가 인기다. 한 앨범으로 획득할 가능성이 있는 포토카드가 전체 몇 종이고, 각각 어떤 형태인지 이 후기를 조합해야만 제대로 알 수 있는 경우도 많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구매 대행업자가 트럭째 앨범을 사서 ‘미공포’만 별도 판매하고, CD는 전부 폐기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했다.

하이브와 자회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 간 분쟁도 앨범 폐기물 문제를 다시 환기시켰다. 민 대표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랜덤 카드 만들고, (앨범) 밀어내기 하고, 이런 짓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이브의 행태를 공격했다. 민 대표는 “(음반 판매량이) 계속 우상승 하면 팬들에게 부담이 다 전가된다. 연예인도 팬사인회 계속해서 너무 힘들다. 멤버들이 기죽을까 봐 앨범 사고 또 사고. 지금 음반시장 너무 잘못됐다”고 했다. 최근 하이브를 비롯한 대형 K팝 기획사들이 앨범 폐기물 해결법으로 친환경 포장지를 택한 것에 대해서는 “녹는 종이,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종이는 다 녹는다. 차라리 앨범을 덜 찍게 만들어야지”라고 지적했다.

대중문화계 전문가 단체 ‘문화연대’는 지난 1일 하이브와 민 대표 간 갈등 원인을 진단하는 토론회에서 ‘대량 앨범 구매 문화’를 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경이로운 앨범 판매량’ 등 하이브 산하 자회사들의 과도한 성과 경쟁이 갈등 원인이 됐고, 팬들에게도 피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토론에 나선 강혜원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는 “팬들이 사인회를 위해 앨범을 수백만원어치씩 사고, 죄책감을 떨치려고 남은 앨범을 기부하는 식의 문화가 심각하게 만연해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K팝 시장의 ‘음반 차트 줄세우기 문화’도 음반 폐기물 양산에 일조하고 있다. K팝 아이돌 그룹별 인기 척도가 되어버린 ‘초동(앨범 발매 직후 일주일간 판매량)’ 수치 경쟁이 대표적이다. K팝 앨범 판매량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K팝 아이돌 성과를 볼 수 있는 객관적인 공식 자료가 사실상 관세청 앨범 수출량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대부분 데이터는 소속사들이 독점하고 있는데, 차트 성적에 유리한 실물 앨범 판매량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대체할 K팝 데이터와 집계 기준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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