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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가슴으로 낳은 딸들'이 10년간 허전했던 '내 가슴' 채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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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한 두 딸과 여섯 번째 어린이날 맞이한 노옥실씨 가족

뉴스1

'입양 공개'를 결정한 노옥실 씨 부부의 가족 사진. /뉴스1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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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입양을 흔히 '가슴으로 낳은' 딸이라고 하잖아요? 이 아이들이 지난 10년 동안 난임으로 허전했던 제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준 거죠."

광주 서구에 사는 노옥실 씨(49·여)와 정진영 씨(52) 부부는 입양 가족이다. 19년 전 결혼 직후부터 아이를 갖기를 시도했지만 오랜 기간 난임으로 치료를 받다가 결국 입양을 선택했다.

당시에는 마지막 수단으로 입양을 결정하면서 여러 우려와 걱정도 많았지만 노 씨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한다. 또 단순히 '옳았음'을 벗어나 입양이 부부와 두 아이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태어난 직후 바로 외로움을 경험했던 첫째 딸 선율(7)과 둘째 라율(5)은 이들 부모를 만나 극진한 사랑 속에 밝고 건강히 자라고 있고 노 씨와 남편 정진영 씨도 아이를 통해 웃음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서른넷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된 노 씨. 그때도 출산이 이른 나이는 아니었다. 남편과 노 씨 모두 신앙을 갖고 있어 많은 아이를 갖고 싶어 했기 때문에 곧장 아이를 가지려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34세부터 43세까지 10년의 세월 동안 자연 임신과 시험관 등 여러 방법으로 아이를 가지려고 시도했지만 자궁이 좋지 않아 실패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임신에 부부는 지치고 슬펐다. 노 씨는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 먼저 남편 정진영 씨가 "입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노 씨는 여자로서 마지막 욕심을 버리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신앙의 이유로 결혼 전 '입양'에 대해 서로 긍정적인 생각이 있다는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막상 실제상황이 되니 쉽게 단념이 되지 않았다.

"가정이 없는 아이들 한 명 한 명도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주변에 입양 가정도 보아 왔지만 막상 제가 입양을 하게 되려니 마음속에서 허락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가족'이란 것은 여러 방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거니까 책도 읽고 공부하면서 마음을 바꿔봤죠."

부부가 입양을 마지막까지 고민한 이유는 주변에서 본 입양 가정이 '편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부부와 아이가 트러블을 겪고 성인이 되기 전 법적으로 인연을 끊어버리게 되는 케이스부터 다른 가족들에게 미움을 받는 모습을 봤다. 아이가 조금만 잘못된 행동을 해도 '누구 닮아서 저러냐', '쟤는 입양을 해서 행동이 달라'라고 말하는 모습을 봐서 걱정이 앞섰다.

이들 부부에게 용기를 준 이는 대한사회복지회 소속의 한 목사님이었다. 그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입양 가족의 케이스를 소개해 주며 곧 엄마가 될 노 씨에게 현명한 육아법을 전수했다. 그렇게 태어난 지 52일 된 선율이가 2018년 이들 부부의 '첫째'가 됐다.

"'나중에 아이가 삐뚤어지면 어떡해야 하지?'라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그때 목사님이 그러셨죠. '그마저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극복하면 된다'고요. 입양한 아이라서 특이하고 특별한 것이 아닌 여느 가정과 똑같이 편견 없이 평범하게 사랑으로 기르자고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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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옥실 씨 부부가 준비한 선율이의 100일 잔치 모습. /뉴스1DB ⓒ News1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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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이를 집에 데려온 후 이들 부부의 가정은 행복과 사랑으로 채워졌다. 그로부터 약 2년 뒤 두 살 어린 둘째 딸 라율이도 이들 부부의 가족이 됐다.

선율이가 6살 됐을 때 이들 부부는 아이에게 입양의 존재를 알렸다.

일각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굳이 입양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냐'고 묻기도 하지만 국내외 입양가족 모임에서는 '입양 공개'를 당연히 하는 추세다.

입양된 것이 사실인데 입양에 대해서 숨기고 모르게 했다가 어느 순간 아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입양 사실을 알게 되고는 가족 형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가족에 대해서 물어보는데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요. 딸이다 보니 아이들이 예민하고 섬세한데 그게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을까 싶어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에 자연스럽게 알려줬죠."

입양 가족에 대한 동화책을 읽던 때였다. '가족은 낳기도 하고 입양하기도 한다. 이 가족은 입양 가족이야. 그리고 선율이도 엄마가 입양했어'라고 전했다. 노옥실 씨는 그때 선율이의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고 회상했다. '내가?'라면서 재차 물어보는 아이의 표정은 순간 쇼크를 받은 듯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다음에는 '엄마 라율이는?'하고 바로 묻더라고요. '라율이도 똑같지. 예쁜 너희를 잘 키울 수 있는 엄마가 없어서 엄마한테 하나님이 맡겨준 거야'라고 말했어요."

입양한 두 딸과 여섯 번째 어린이날을 맞이한 이들 부부의 주말도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다. 노 씨는 어린이날 선물로 두 딸이 좋아하는 티니핑 피규어와 맛난 치킨을 사줄 생각이다. 남편과 함께 네 식구가 음악회를 가기로 일정도 잡았다.

앞으로 평생의 시간 동안 이들 가족에게는 여러 차례 어려움과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입양 가족'이라서 있는 갈등이 아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이라면 어느 가정에서든 겪는 그런 당연하고 평범한 갈등이 이들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입양 부모는 다른 부모와 거의 유사하지만 하나 다른 게 있어요. 아이들의 마음속에 두 명의 엄마가 있다는 거죠. 나중에 애들이 자아정체성을 찾으면서 힘들어할 때, 사춘기가 오면 그때 같이 옆에 있어 주고 울어주고 웃어 주면서 그 마음을 이해해 줄 거예요. 아이가 구김살 없이 마음의 근육을 잘 키워서 입양인으로서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할 겁니다."

그런 옥실 씨에게 딸 선율이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야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나는 엄마가 꼭 있어야 해.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는 최고야."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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