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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윤일병 때 만든 시스템, 채상병 때 작동…문제는 개입하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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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일 오전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 전, 고 윤 일병 유가족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낸 재판 기록과 조사 관련 문서를 들고 있다. 왼쪽부터 매형 김진모씨, 어머니 안미자씨, 큰누나 윤선영씨.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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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7일, 승주는 맞아 죽었다. 선임병 여럿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최후의 일격을 맞고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군은 냉동만두를 먹다 질식해서 죽었다고 했다. 그 거짓말에 맞서 10년을 왔다. 이제 ‘윤 일병’은 군대 폭력 피해자를 상징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지난 1일 윤 일병의 가족 안미자(69·엄마), 윤선영(46·누나), 김진모(49·매형)씨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이튿날 국회는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특별검사법을 통과시켰다. 유족은 ‘윤 일병’ 이후 개선된 제도와 “유족 손을 잡아준” 수사단장 덕분에 채 상병 사건이 묻히지 않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시스템을 침범해 들어오는 어떤 입김을 우려했다.



채 상병 사건이 발생한 뒤 윤 일병 어머니 안씨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승주 사건 났을 때 박정훈 대령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2014년은 지금과 많은 것이 달랐다. 매형 김씨는 “2014년 4월, (박 대령과 비슷한) 헌병대장에게 ‘(질식사와 무관한) 멍 자국과 관련해 더 밝혀진 게 있냐’고 물었더니, ‘지금 나한테 수사 지휘 하느냐’고 따지더라”며 “지휘관부터 군의관, 부검의, 군 검찰, 헌병, 육본, 국방부 모두 한목소리로 질식사라고 했다. 내부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윤 일병 사건에서 박정훈 대령이라는 사람이 잉태됐다고 생각한다”며 “저처럼 싸우는 유족이 (또다시) 나올 줄은 알았지만, (유족과) 같이 싸워주는 헌병대장(수사단장)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엄청난 성과고 기적”이라고 말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해마다 군대에서 100여명이 죽는다. 김씨는 “채 상병 사건을 보면서 윤 일병 사건을 통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작동하는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고 했다. 예전과 달리, 군 사망 사건 수사가 군사경찰 안에 갇히지 않으면서 최소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스템에 개입하는 ‘손’이다. 채 상병 사건에선 국방부 법무관리관 유재은, 장관 이종섭을 넘어 대통령 이름까지 오르내린다. 김씨는 “문제는 사람”이라며 “군은 비어 있는 구멍들을 잘 이용한다. 시스템이 바뀌었다고 안주하고 감시 안 하면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윤 일병’ 덕분에 ‘채 상병’ 사건은 외부에 알려졌고, 특검법까지 통과됐다. 하지만 정작 ‘윤 일병’ 사건의 축소·은폐 의혹은 전혀 드러난 게 없다. 당시 유족이 헌병대 수사과장, 헌병대장, 부검의, 헌병대 검찰관, 의무대 지원관 등 5명을 축소·은폐 혐의로 고소했지만 모두 기소되지 않았다. 살인죄, 상해치사죄 등으로 가해자 5명이 처벌받았지만, 축소·은폐 의혹과 관련해 처벌받은 이는 없다. ‘윤 일병’ 사건 이후 생겨난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은 축소·은폐 의혹을 밝혀달라는 진정을 각하했고, 이에 항의하는 윤 일병 유족 등을 수사 의뢰했다.



지난 10년의 싸움은 매형 김씨가 주도했다. “사위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고 어머니 안씨는 말했다. 사고 당일 밤 누나 윤씨는 남편 김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한다. “당신이 도와줘야 한다”고. 김씨는 결심했다. “뭐가 됐든지 간에 하루에 한 가지씩 꼭 하겠다”고. 그렇게 하여 나온 결과 중 하나가 470여건의 정보공개요청 자료다. 김씨는 “뭔가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의문사가 될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10년은 군대와 싸워보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나선 일이었지만 이제는 군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운동이 되었다. 어머니 안씨는 “언론에 나오지 않아 그렇지, 너무 힘든 사람들이 많다. ‘용기 내라, 힘내라’ 하면서 재판하는 곳 찾아가고 하는 게 중요하다”며 “소외된 사람, 그리고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지체 없이 달려가는 그런 삶을 살겠다.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누나 윤씨도 “동생처럼 인권이 말살돼 죽는 군인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며 “어떤 죽음이든 은폐되거나 조작되지 않고, 가해자가 온전히 처벌받는 걸 기본으로 만드는 게 우리 가족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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