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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집단성범죄 자백하고 죽었는데…공범은 처벌 안된다는 대법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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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 과거 성범죄 자백하며
중학교 동창 3명 공범 지목
2심 유죄 판결 뒤집은 대법
“기억 왜곡됐을 가능성 있어”


매일경제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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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자살 전 유서를 통해 지인들과 과거 저질렀던 범죄를 자백해도 당시 있었던 구체적 행위나 정황 등이 입증되지 않으면 증거능력이 없어 당사자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남성 3명에게 각각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 피고인들은 2021년 3월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자살한 A씨의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로, A씨의 유서 내용을 발단으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A씨가 남긴 유서에는 중학교 3학년 때 피고인들과 함께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자백이 담겨 있었다.

유서에 따르면 A씨와 피고인들은 피해 여학생을 놀이터로 불러내 소주를 마시게 하고 만취 상태로 만든 뒤 돌아가면서 유사성행위와 성폭행 등 범죄를 저질렀다. A씨는 유서에 “당시 왜 그런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겠다”며 “아직 공소시효가 남은 만큼 조속한 수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적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유서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가 시작돼 재판까지 열렸지만 1심은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쟁점은 A씨가 남긴 유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는지 여부였다.

1심은 해당 유서가 형사소송법 제314조에서 규정한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피고인들이 무죄라고 판단했다. A씨가 사망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재판 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만큼 유서 내용의 신빙성이 충분히 보장돼야 하는데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1심은 A씨가 사망 전 세무사 시험에 떨어져 우울증을 겪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던 점 등도 참고했다.

그러나 2심은 A씨가 남긴 유서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피고인들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유서를 통해 범행을 고백한 이유는 처벌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지, 제3자의 강요나 회유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전부는 아니지만 피해자 진술과 유서 내용이 상당 부분 부합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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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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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는 이 사건 이후 약 15년이 흐를 때까지 가족이나 주변 지인에게 해당 사건을 언급하거나 죄책감을 호소한 적이 없다”며 “사망 전날 친구와 술을 마실 때도 세무사 시험 낙방으로 인한 괴로움만 호소했지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서가 범행 직후가 아닌 15년 가까이 흐른 이후 작성된 만큼 A씨의 기억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유서에는 피해 여학생을 성폭행하기 위해 피고인들과 술자리를 만들었다고 적혀있으나, 피해 여학생은 당시 동성친구 제안에 따라 술자리에 참석했다고 진술하는 등 사실에 대해 명백히 배치되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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