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서민 울린 다중피해범죄 손본다지만…인권 '발목' 잡을 수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흉악범죄자 아닌데…피고인에 '전자발찌' 논란
손목형 전자장치 훼손사례 늘자 특단의 조치
"부착대상 확대, 제도 도입 취지 퇴색" 지적도

머니투데이

2020년 8월5일 전자보석 시행에 맞춰 법무부가 제작한 홍보 포스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상장사 대표 A씨가 최근 법원에서 보석 청구가 인용돼 석방됐다. 조건은 전자장치 부착. 보호관찰소에서 내민 것은 전자발찌였다. A씨는 재판을 마칠 때까지 뭉툭한 전자발찌를 찬 채 은행업무를 보고, 회사 회의를 주재하고, 바이어도 만나야 해 당혹스럽다.

전자보석 제도는 도입 당시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전자보석 대상자에 대해 살인·강도·성폭력·미성년자 유괴 등 4대 중대범죄 확정사범에게 부착하는 기존 발목부착형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반영해 스마트워치 형태의 손목부착 전자장치를 채우도록 법무부 지침이 마련됐다. 전자발찌가 주는 낙인효과와 선입견을 차단하기 위해 시중의 스마트워치와 비슷하게 제작한 장치로 전자보석 대상자가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제는 전자장치 부착을 조건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전자발찌에 비해 비교적 훼손하기 쉬운 손목형 전자장치를 끊고 도주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불거졌다. 1조6000억원대 피해를 남긴 라임 사건의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보석 기간 중 손목부착형 전자장치를 훼손하고 도주했다가 48일만에야 검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형기 만료 후 출소한 중범죄자가 전자장치를 훼손하면 전자장치부착법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되지만 김 전 회장처럼 재판을 받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피고인의 경우 전자장치를 훼손해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국회에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6월 보석 도중 전자장치를 훼손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같은해 11월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뒤 6개월째 한차례도 논의되지 않은 상황이다.

주요경제범죄 혐의 보석대상자에게 손목형 전자장치 대신 훼손이 어려운 전자발찌를 부착하도록 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피해액이 많은 사기·횡령·배임이나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전세사기 등 다중피해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엄단 의지를 보여준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전자발찌 대상 범죄를 확대할 경우 전자보석 도입 취지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화이트칼라 범죄 혐의 피고인의 경우 보석신청을 하지 않고 구속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석 청구를 했다가 자칫 재판이 끝날 때까지 전자발찌를 찰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특경법 사건은 사안도 복잡하고 증인 수도 많아 보통 재판기간이 2년이 넘는 만큼 구속기간 내 보석될 경우 1년 넘게 전자발찌를 차게 된다. 반대로 보석 없이 1심 구속기간인 6개월만 지내면 어떠한 장치도 부착하지 않고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다.

머니투데이

[인천=뉴시스] 전진환 기자 = 박성재 법무부장관이 20일 오후 시설 및 마약사범 관리현황 점검을 위해 인천 미추홀구 인천보호관찰소를 찾아 보호관찰 대상자가 착용하는 전자발찌를 바라보고 있다. 2024.03.20. amin2@newsis.com /사진=전진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달성하려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을 고려한 비교형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도 "요즘 대부분 사건들이 6개월 내에 결론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피고인들이 다 석방된다"며 "검찰도 무리해서 힘을 빼기보다 구속기간 내에 빨리 증거를 확보하는 게 더 나은 측면도 있다"고 했다.

조준영 기자 cho@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