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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재희 칼럼] 의대·교대 정원 조정의 두가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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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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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대학에서는 전공의 정원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고, 국가의 기간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과 전공은 정부가 정원 조정을 주도한다. 그동안 경찰, 군인, 교사, 반도체와 AI 관련 첨단산업 인력 분야의 양성 정원을 조정할 때는 관련 집단에서 이견을 표출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고소득 의사 양성 과정의 정원 조정처럼 장기간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병원을 자주 찾게 되는 노년층과 의료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 주민을 위해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의대 정원은 1998년 제주대 의대 신설 때 증원이 이루어졌다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감축한 후 동결해 왔다. 정부가 지난 2월 6일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한 후 의·정 갈등이 석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교육부는 4월 11일 ‘초등교원 양성 규모 적정화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저출산 영향으로 초등학생이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여 13년 만에 초등교원 양성 인원을 줄이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 전공 분야의 대학 정원을 조정하는 것은 미래 사회의 인력 수요를 예측하여 대비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에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설립된 일반대학, 전문대학, 산업대학, 교육대학, 원격대학 등이 있고, 그 밖에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육·해·공·간호 사관학교와 경찰대학 등도 있다. 대학 성격상 의대와 교원 양성 대학은 특성화 대학이라 하고 사관학교, 경찰대학 등은 특수대학으로 분류된다. 올해 비슷한 시점에 입학정원을 조정하는 의대와 초등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는 2024학년도 기준 입학정원 규모가 각각 3058명과 3847명으로 비슷하고, 졸업 후 면허증과 자격증을 발급받아야 직업을 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의·정 갈등은 정부가 의료개혁 방안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가운데 불쑥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한 데서 기인했다. 그 후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만 밀어붙이고, 의사 집단은 국민과 환자를 무시하고 증원 계획 철회 주장만 고집하면서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병원 이탈, 의대 교수 사직·휴진에 이어 대한의사협회(의협) 새 회장은 정부에 대해 강경 대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의대 정원 증원에 극단적으로 반대하며 정부와 대치하는 의사 집단의 태도는 이기심을 넘어서 특권의식의 표출이라고 보는 시민들이 많다.

한편 초등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필요한 교사 자리도 줄어들어 내년도 대학입시부터 10개 교대와 2개 대학은 초등교육과 입학정원을 12% 감축하기로 했다. 초저출산 사회에서 초등교사 임용 인원이 감소하면서 임용시험 경쟁률은 높아지고 있다. 초등교사 신규 임용 규모가 2016년에는 6591명이었으나 올해는 3157명으로 52%가량 감소했고, 초등교사 임용 합격률도 2014년 69.3%에서 지난해 43.6%로 낮아지면서 임용시험 경쟁이 치열한 지역의 교대생들은 입학정원을 줄여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대학 졸업생들이 자기 전공 이외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도 많지만, 정부의 수요 예측에 따라 양성된 특성화 대학과 특수대학 졸업생들은 재학 중 수학한 교육 내용의 전문성 때문에 다른 분야로 진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관학교와 경찰대학 졸업자는 각 지역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지만, 의대와 교원 양성 대학 졸업생은 자격증 취득 후 직업 선택의 자유에 따라 본인이 선택하여 전국 어디서 개업하거나 임용시험에 지원할 수 있다. 따라서 의대생들은 수익이 높은 전공을 선택하거나 생활 여건이 좋은 지역에서 근무하려 하고, 교사들도 근무 여건이 좋은 광역자치단체 지역 임용시험으로 몰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의대 정원 증원 발표에서 다행스러운 점은 지역별 수요를 반영하여 증원 규모를 배정했으며, 서울에는 단 한 명도 증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공·필수·지역 의료를 개선하겠다는 선언만 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지 않아서 정부 계획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의료개혁은 특정 전공과 지역에 의사가 편중되지 않도록 정부가 의료수가 조정, 수련의 근무 여건 개선, 수술 위험에 대한 면책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을 제시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이전 정부에서도 제기된 공공 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교대 정원 조정에서는 지역별 수요에 대한 고려 없이 각 교대의 정원을 일률적으로 12%씩 감축하겠다는 안이한 사고가 문제다. 교육부는 이번에도 대학 간 통폐합 등 국립대학 구조개혁을 외면하고 전국 교대의 입학정원을 조정할 때마다 동일 비율만큼 일괄적으로 감축하던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그 결과 대부분 교대의 입학정원이 300명대이거나 그 이하인 소규모 대학이 되어서 학과와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더욱이 비수도권 교육대학에는 신입생 중 70% 내외가 수도권 고교 출신인데, 이들 대부분이 졸업 후 출신 고교 지역으로 유턴하여 응시하므로 지역에 특화된 초등교사를 공급하기 어렵다. 전국 17개 시도 중 5개 시도(강원, 경북, 충남, 충북, 전남)에서는 2~3년째 임용시험 응시자가 미달될 정도로 임용시험 경쟁률의 지역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의대와 교대 등 특성화 대학의 정원을 조정할 때 다음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관련 부처는 이해 당사자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미래에 필요한 인력을 산출할 때 관련 전문가의 연구를 바탕으로 진솔한 협의를 통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이번 의대 정원 증원 과정에서 의사단체들은 이런 회의와 회의록 부재를 주장하고 있고, 교대 정원 감축에서는 지역 수요는 도외시한 채 교육대학교총장협의회를 통해 일률적인 비율의 감축 방안을 제시하였다.

둘째, 기피 전공이나 지역에도 의사와 초등교사가 배치될 수 있도록 양성제도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초등교사 분야에서 각 교육청이 임용시험에서 지역 가산점을 축소하면서 교대 입학시험에서 지역인재 선발전형을 37.1%로 높였다. 또한 접경지역과 도서지역 교대에서 특별전형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이 임용시험 합격 후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를 실시하기도 한다. 의료개혁 분야에서도 공공 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 필수의료 패키지와 지방대 육성법 적용을 위한 후속 법령을 제정해야 한다.

대학 정원 조정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미래를 위한 문제이므로 의료개혁과 교육개혁을 위해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성화 대학 졸업생들이 우선 이기심과 특권의식을 버리고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국민이 납득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인적자원 개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어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아주경제=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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