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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법조인조차…고단한 재판 앞두고 숨진 안타까운 사연들 [서초동M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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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가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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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을 가진 아들과 사는 노부부가 있었다. 거구인 아들의 힘을 당할 재간이 없던 탓에 사건사고가 잦았다고 한다. 반복적인 충격(폭행 등)으로 노부모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는가 하면, 아들이 큰돈을 지인에게 그냥 넘겨줘 성년후견인 제도를 신청하기도 했다.

쉬쉬하며 지내던 어느 날 아들은 노부모에게 “내 인생을 망쳤으니 죽이겠다”며 욕설을 퍼부었고,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노부모는 결국 아들에 대한 접근금지와 함께 소송을 시작했다. 아들은 소송 과정에서 원망을 쏟아냈지만, 노부모는 독하게 마음을 먹자고 다짐한 뒤 매몰차게 연락을 끊고 집을 비웠다.

그러다 노부모는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가족 모두 그가 사망하고 몇 주 뒤에야 소식을 알게 됐는데, 노부모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 전 재산을 아들의 이름으로 기부하며 씻을 수 없는 미안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죽음은 또 있었다. 대학병원에 다니던 한 간호사는 환자에게 항생제를 주사했는데, 환자가 쇼크를 일으켜 사망한 사건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간호사는 누군가 건네준 주사기를 사용했을 뿐, 주사제를 직접 준비한 것은 아니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주사제를 준비했다는 다른 간호사를 찾을 수 없었다. 앞이 깜깜한 상황에서도 변호인은 의뢰인을 위로하며 열심히 준비해보자고 다독였다. 변호인은 의뢰인과 관계를 떠나 인간적으로도 언니, 동생 같은 존재가 되자고 다짐했다.

병원 동료들을 재판의 증인으로 부르기 전날, 간호사는 숨진 채 발견됐다. 소식을 들은 변호인은 펑펑 울었고,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잠을 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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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받아들이기 어렵고 힘든 소식이다. 아는 사람,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의뢰인의 사망은 변호사에게도 무겁게 느껴진다. 특히 형사사건을 하다 보면 기나긴 수사과정과 재판에 지쳐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크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다 변호사가 된 직후, 부장판사 출신 한 교수가 여러 사건에 연루돼 재판받던 중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유서에 억울하다는 호소와 함께 검찰 수사와 재판에 대한 부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을 적었다고 한다.

평생을 법조계에 헌신해 전문가였던 그 교수조차 수사와 재판의 압박으로 몸을 내던진다. 하물며 법을 잘 알지 못하거나 생소한 사람들이라면, 기약 없는 막막함 속에서 괴로움을 벗어나기란 참 어려운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조지훈의 승무라는 시에는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는 구절이 있다.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모든 번뇌는 돌아보면 별빛이고 지나보면 별이 빛나듯 한순간이라는 의미가 제일 와 닿는다.

송사로 고통받는 일, 중형을 선고받는 일, 가까운 사람에게 큰 배신을 당한 일 등을 겪은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었다”는 연락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힘든 시간을 함께해 온 변호인으로서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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