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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지역사랑 탄소 기부로 고향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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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현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코로나 시국에 개최되었던 화상회의에서 일본 대학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당시 한국인 출신의 교수는 논의가 끝나갈 무렵에 콘퍼런스 주제와 무관했던 일본 고향납세제의 답례품이 재미있다며,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정책을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고향납세제는 사실 국내에서도 2007년 대선부터 공약 사항으로 검토된 바가 있으며, 2021에는 법률까지 통과된 상태였다. 덕분에 2023년 들어서는 "고향사랑기부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될 수 있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주민등록상의 거주지가 아니면, 고향이든 타향이든 상관없이 기부할 수 있는 제도다. 10만 원 한도 내에서 세액 공제라는 혜택을 받기 때문에 아무런 금전적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기부금의 30% 수준에서 지역의 특산품을 받는 일거양득(一擧兩得) 혹은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다른 지역에 소액을 기부하면 연말 정산에서 전부 환급받을 뿐만 아니라, 납부 즉시 선물까지 받는 정책이다. 그야말로 기부자에게는 꿩 먹고 알 먹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국가 사업일 수 있다.

이처럼 기부자에게 혜택이 쏟아지는 고향사랑기부제를 도입한 이유는 비수도권의 인구 유출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낙후 지역의 경기 침체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정 운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지역 간 재정 격차를 해소하려는 목적의 정책 수단으로 고향사랑기부제가 도입된 것이다. 그렇지만 시행 첫해의 성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기부 건수가 52만 건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모금액 자체도 650억 원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한국보다 앞서 도입했던 일본은 어땠을까?

일본도 2008년 도입 첫해의 실적은 5만 건에, 기부금도 81억 엔 정도였다. 그렇지만 세액 공제가 확대되고 지방자치단체의 답례품 경쟁이 벌어지면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2022년에는 기부 횟수가 5184만 건에 달할 뿐만 아니라, 금액 자체도 9654억 엔까지 급성장했다. 이처럼 인기가 폭발했던 정책이다 보니, 일본 대학의 비전공자 교수까지도 고향납세제를 자랑할 정도였다.

프레시안

▲고향사랑기부제 홈페이지, 고향사랑e음 (출처: www.ilovegohyang.go.kr)



그렇지만 일본의 고향납세제가 과연 바람직한 모범적 사례인지는 의문이다. 세금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역과 무관한 전자제품이나 상품권이 선물로 지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가의 특산품을 지급하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심지어는 과다한 답례품 지급으로 인해 수익보다는 지출과 부담이 늘어나 적자 사태까지 발생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첫걸음을 뗀 한국은 어떨까?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모금한 지자체는 22억 원으로 전남 담양군이었으며, 다음으로는 제주, 전남 고흥군, 전남 나주시, 경북 예천군의 순이었다. 기부금액은 평균적으로는 2억 원이었으며, 하위 20%는 5000만 원에 불과했다. 물론 일본도 고향 납세제의 도입 초창기에는 실적이 저조했기 때문에, 한국도 올해부터 정책 홍보가 활성화된다면 참여자와 기부 건수가 급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일본과 한국에 도입된 고향사랑기부제가 동일하게 소비지향적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국민이 가장 많이 선택한 답례품은 소고기, 해산물, 햄버거, 이불, 샌드위치 같은 특산품들이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가장 많았던 선택은 농축산물로 전체의 44%였으며, 다음으로 가공식품, 지역상품권, 수산물, 생활용품의 순이었다. 결국 고향사랑기부제는 도시 사람들이 농어촌에 10만 원을 기부해서 지역의 자원을 소비하자는 정부 주도의 캠페인성 사업인 셈이다.

고향의 자원을 소진하기보다는, 우리가 애착을 갖고 있는 지역이 친환경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탄소중립 기부금을 납부하고 이를 정부가 세액 공제 해주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된다면 어떨까?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2050년까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상황에서, 농축산 식품이나 특산품을 소비해서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기보다는 고향의 저탄소 친환경 사업을 후원하는 제도가 된다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대구가 생태도시를 표방하고 태양광 패널을 확대하며 자전거 중심의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미래 비전을 제시했을 때, 서울에서 살고 있는 영남권 출신들이 후원하는 고향사랑기부금이 마련된다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별도의 법률 개정 없이, 이미 도입된 제도적 틀 안에서 개별 지자체가 쉽게 채택하고 반영할 수 있는 간단한 아이디어라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남아 있다. 과연 지역에 10만 원을 기부할 때, 전남 완도군의 해삼과 전복 대신 탄소중립 사업을 선택하는 납세자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의 욕심은 공익적 후원보다는 개인적 이익에 손이 먼저 가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일본의 고향납세제가 처음에는 존재감이 없을 정도였다가, 10년 뒤에는 급성장했던 것처럼 확대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라는 기후변화 관련 국제기구는 탄소중립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하려면, 인류의 모든 사회경제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단언한 바 있다. 작년에 도입된 한국의 고향사랑기부가 자원을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사랑 탄소 기부'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상현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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