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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월)

이슈 아동학대 피해와 대책

“같은 아픔 겪지 않도록”···아동학대신고의무자들의 ‘자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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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동학대신고의무자들이 모인 비영리 단체 ‘아이즈’ 공동대표 박경진씨(가운데), 강민철씨(오른쪽)가 14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의 한 대여공간에서 이날 상담자인 체육교사 임모씨와 아동학대신고의무자 홍보 키링 만들기를 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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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2시 서울대입구역 인근 한 오피스텔 건물에서 청소년상담사 박경진씨가 화이트보드에 ‘아동학대 신고자 지침’을 휙휙 적어 내려갔다. “아동학대 신고의 경우 (신고자가) 2차 피해를 겪는 경우도 많아요.” 박씨가 말했다. 상담을 받으러 온 체육교사 임모씨(33)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선 아동학대신고의무자들이 서로 얘기하고 돕는 ‘자조모임’이 열렸다.

국내 아동학대신고의무자는 300만명에 달한다. 교사, 사회복지사, 아동전문가 등 25개 직군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신고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박씨는 “정작 신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고했을 때 받는 불이익을 막을 방법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시스템은 없다”고 말했다.

2020년 박씨가 근무하던 아동복지시설에서 생긴 일이 대표적이다. 아동성학대 사건 폭로가 나왔고 경찰 수사가 진행됐다. 시설 측은 가해자에게 1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는데 그뿐이었다. 아이들과 가해자 간 분리 조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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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신고의무자들이 모인 비영리단체 아이즈 공동대표인 박경진씨(왼쪽)와 강민철씨가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대여공간에서 아동학대신고의무자를 대상으로 한 자조모임을 하기 전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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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정황이 추가로 포착됐지만 박씨는 망설여졌다고 했다. 2017년 아동학대 정황을 신고했다가 따돌림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지도사로 일하는 남편 강민철씨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강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이를 신고했다. 권익위는 2022년 6월 가해자의 정서적 학대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해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그런데 아동학대 신고자라는 사실이 꼬리표처럼 강씨를 따라다녔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강씨는 “신고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며 “‘문제 일으키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각오도 해야 한다”고 했다.

2022년 이들은 다른 아동학대 공익제보자 3명이 모여 비영리단체 ‘아이즈’를 만들었다. 단체를 만들자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가 한달 평균 30~40통씩 왔다. 지금은 아동복지시설 종사자·교사·어린이집 교사 등 50명이 넘는 아동학대신고의무자들이 함께 활동 중이다. 참가자들은 매달 2~3번 자조모임을 열어 어려움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한다. 각자가 휘말린 사건에 대한 행정적 대처 방안도 함께 고민한다. 강씨는 “먼저 공익신고를 했던 이들에게 정보를 받기도 하고 위로를 주고받으면서 힘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상담교사 이모씨의 사례는 모임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이씨는 2022년 체육교사가 학생들에게 폭언을 했다는 진술을 받아 교장에게 알렸지만 신고자로서의 신원보호를 받지 못했다. 문제의 체육교사로부터 ‘네가 무슨 상담교사냐, 병원 가서 상담이나 받아라’ ‘애들 불러서 들쑤시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충격과 스트레스로 병가를 냈지만 학교는 제때 승인하지 않았고, 무단결근을 했다며 징계를 했다. 이씨는 행정소송을 냈고 지난 3월 항소심에서 경기도교육청은 이씨의 견책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씨는 사건이 끝난 이후에도 아이즈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씨는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가 어려움을 겪은 선생님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다시 일터로 돌아갈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아동학대 오인·과잉 신고를 당했다고 찾아오는 교사들이 늘었다고 한다.

모임에서는 아동학대신고 의무자 대상 교육, 아동학대 신고 피해 사례집 개발도 준비하고 있다. 강씨는 “아동학대신고의무자 법정 교육은 고작 1시간뿐”이라며 “아동학대를 직접 봤는지, 제3자에게 들었는지 등에 따라 지침이 세분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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