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가 15일(현지시각) 슬로바키아 중부 한들로바에서 총격을 당한 직후 보안 요원들이 그를 차에 태우고 있다. 한들로바/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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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러시아·반미 성향의 로베르트 피초(59) 슬로바키아 총리가 총격을 당해 중상을 입으면서, 날로 양극화하는 이 나라 정국이 혼란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피초 총리가 15일(현지시각) 슬로바키아 중부 도시 한들로바에서 각료 회의를 마친 뒤 총격을 당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한 목격자는 피초 총리가 회의장에서 나와 지지자들과 악수하는 동안 총소리가 들렸다며 이어 경찰이 한 남성을 진압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들은 71살의 남성이 총을 5발 발사했고, 피초 총리는 복부 등에 적어도 3발의 총알을 맞았다고 전했다. 용의자는 3권의 시집을 낸 슬로바키아작가협회 소속 작가이며, 한 쇼핑몰에서 경비로 일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초 총리는 인근 도시 반스카비스트리차로 옮겨져 장시간 수술을 받았다. 총격 직후에는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수술이 잘 이뤄져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토마시 타라바 부총리가 밝혔다. 그는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출연해 “그가 현재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그가 결국 견뎌낼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마투시 슈타이 에슈토크 내무장관은 “암살(시도)은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가해자는 대통령 선거 뒤 범행을 결심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치러진 대선에서는 피초 총리와 가까운 페테르 펠레그리니 전 총리가 승리한 바 있다.
피초 총리가 총격을 당한 이후 의회는 무기한 휴회를 선언했고, 정치권은 일제히 갈등 유발 중단을 촉구했다. 슈타이 에슈토크 내무장관은 “소셜미디어와 언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을 겨냥한 공격과 증오 표현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최대 야당인 ‘진보 슬로바키아당’도 예정됐던 정부 규탄 집회를 취소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킬 행동 자제를 촉구했다.
슬로바키아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자 정치 폭력이 드문 나라여서, 피초 총리의 피격은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피격 현장 근처에 있던 60대의 시민은 “이런 일을 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 세계 주요 지도자들은 일제히 이번 총격 사건을 강력 규탄했다.
피초 총리는 2006년 총리에 취임한 이후 지난 2018년까지 모두 세 차례 총리를 지냈으며 지난해 10월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해 네번째로 총리에 올랐다. 그는 여론의 향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친유럽연합 성향부터 친러시아 성향까지 다양한 정치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특히 지난해 10월 25일 새 임기를 시작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고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등 친러시아 성향을 노골화했다. 국내적으로는 지난 2월 반부패 담당 특별조사기구를 폐쇄하고 공영 방송 통제 강화를 시도하면서 야당의 반발과 정치적 양극화를 부채질해왔다. 그는 유럽연합 지도자 가운데 가장 강한 친러시아·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를 높이 평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슬로바키아 외교부 자문역을 지낸 밀란 니치 독일외교관계협회 분석가는 “이번 사건은 고립된 (단발성) 사건이 아니다. 유럽에서 가장 양극화가 심하고 정치인에 대한 위협이 잦은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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