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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마약 밀수범, 10년 지인에 "나 좀 숨겨줘"…대법 "도피교사 인정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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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징역 8년…"일반적 도피행위 범주 벗어나 방어권 남용"

대법 파기환송 "친분관계로 부탁 들어준 것, 일상적 도피"

뉴스1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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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10년 이상 친분을 쌓아 온 지인에게 자신을 집에 숨겨 달라는 등의 부탁을 한 것은 처벌을 받을 만큼의 도피 행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범인도피교사가 아닌 방어권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검찰은 지난 2021년 10월 A 씨가 B 씨 등과 공모해 태국에서 메스암페타민(필로폰) 1.5㎏을 밀수입한 혐의로 A 씨의 주거지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A 씨는 압수수색 다음날 C 씨에게 자신의 은신처와 차명 휴대폰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A 씨와 C 씨는 2010년 B 씨의 소개로 만나 가깝게 지내 온 지인 사이였다.

이후 C 씨는 같은해 10월 18일부터 11월 23일까지 자신의 주거지에 A 씨를 숨겨 주고 자신의 지인 명의 휴대폰을 개통해 A 씨가 쓸 수 있게 했다.

주거지를 찾은 수사관들에게는 "나는 A 씨의 번호도 모르고 연락하려면 다른 지인에게 부탁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해 건물 안에 있던 A 씨를 도피시키기도 했다.

1심과 2심은 A 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은신처와 차명 휴대폰 마련 등을 요청한 것이 일반적인 도피행위의 범주를 벗어나 방어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범인도피교사죄의 성립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먼저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나 피고인이 스스로 도망치는 것과 도피를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처벌하지 않으므로 범인과 조력자 간 관계, 구체적 상황 등을 두루 살펴 '방어권 남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C 씨는 A 씨와 10년 이상의 친분관계 때문에 피고인의 부탁에 응해 도와 준 것으로 보이고, 도피를 위한 인적·물적 시설을 미리 구비하거나 조직적인 범죄단체 등을 구성해 역할을 분담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C 씨가 A 씨와 자신의 주거지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차명 휴대폰을 쓰게 해 준 것 역시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A 씨와 C 씨 사이에 암묵적으로 'A 씨가 수사기관에 검거될 위험이 있다고 보이면 A 씨의 소재를 허위로 진술해 도피시켜 달라'는 취지의 의사가 있었고 그 결과 A 씨가 도피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의사나 그에 따른 도피의 결과를 형사피의자로서의 방어권 남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mau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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