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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김호중길, 승리숲, 박유천 꽃길… '연예인 편승' 지자체 홍보 곳곳 뒤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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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중 음주운전·뺑소니 논란에
김천 '김호중 소리길' 철거 여론
연예인 마케팅에 더 주의할 필요
한국일보

21일 경북 김천시에 조성된 '김호중 소리길'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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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연예인과 같은 지역이라는 게 부끄럽습니다. 당장 철거해야 합니다."
(경북 김천시청 홈페이지 게시판)

'음주 뺑소니'로 대형 사고를 친 트로트 가수 김호중(33) 때문에 난감한 지방자치단체가 바로 경북 김천시다. 김천은 김호중이 고등학교(김천예고)를 졸업한 곳. 그래서 김천시는 2021년 김천예고 일대 100m 구간에 김호중 벽화와 포토존 등을 설치하고 '김호중 소리길'로 명명했다. 시가 들인 돈은 2억 원. 전남 진도군이 '송가인길'을 조성해 큰 효과를 본 것에 자극받아, 김호중을 시 홍보에 활용하려는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매년 10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았고, 지난해에도 15만 명이 방문했다. 김호중 팬클럽 회원들의 '성지 순례' 1순위 코스로 꼽혔다.

그러나 김호중의 범행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곳은 김천시의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 이름을 딴 길을 철거해야 한다는 시민 여론이 비등하다. 한 김천시민은 "김호중길을 보고 우리 아이들이 뭘 배우겠냐"며 "범죄자를 기념하는 길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천시청은 일단 두고 보자며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국일보

김천시청 홈페이지에 '김호중 소리길' 철거를 요구하는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김천시청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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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편승 마케팅 도마에


연예인 명성을 이용해 자기 지역을 홍보하려는 일부 지자체의 편승 마케팅이 김호중 사건을 계기로 도마에 올랐다. 지자체장을 알리거나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바로 효과를 내는 '특효약'일 수도 있지만, 해당 연예인이 사회적 물의라도 일으키는 날엔 지자체 명성에 '독약'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중적 특성을 명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가 연예인 마케팅을 했다가 논란 끝에 설치와 철거를 반복한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5년 아이돌 그룹 빅뱅 출신 승리의 중국 팬클럽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근린공원에 '승리숲'을 조성했다. 팬클럽은 승리의 26회 생일을 기념한다며 나무 200여 그루를 심었고, 팻말도 설치했다. 하지만 나중에 승리가 '버닝썬 사태'에 연루되자, 승리숲에 부지를 제공한 강남구를 비판하는 여론이 줄을 이었다.
한국일보

지난 2019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근린공원의 한 시설에 중국 팬클럽이 비용을 부담한 '승리숲' 팻말이 설치돼 있다. 현재 팻말은 철거된 상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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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배우 박유천의 팬클럽은 인천 계양구 서부천 일대에 '박유천 벚꽃길'을 조성했다. 박유천의 벽화, 안내판, 그가 출연한 드라마 대사 등이 담긴 시설물을 설치했다. 그러다가 이후 박유천의 마약 투약 혐의가 일자 지역 민간 봉사단은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을 우상화할 이유가 없다"며 2019년 관련 시설을 모두 제거했다. 이 밖에 전북 군산시는 2018년 지역 출신 고은 시인의 '미투' 의혹 이후 생가 복원과 문학관 건립 등 테마거리사업을 취소했고, 서울시도 서울도서관 내 고은 시인의 전시 공간이었던 '만인의 방'을 철거했다.
한국일보

대구 중구 대봉동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입구에 고 김광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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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하다고 바로 따라가면 뒤탈


물론 연예인 편승 마케팅이 성공을 거둔 사례도 많다. 경기 성남시는 신해철의 작업실이 있던 분당구 일대를 신해철 거리로 만들었고, 대구 중구는 김광석 고향인 대봉동 일대를 '김광석 다시그리기길'로 조성했으며, 서울 종로구와 대구 달성군은 송해 선생의 발자취를 담은 거리와 공원을 만들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침체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분명한 효과가 있다는 게 해당 지자체 측의 설명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우리가 연예인의 앞날까지 예측할 순 없는 노릇"이라며 "위험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대규모 팬덤을 등에 업은 상황이라면 방문객 증가 효과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결국 연예인 마케팅을 아예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념사업 추진을 지금보다는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연예인에게 문제가 생기면 조성 비용은 모두 '헛돈'이 돼버리고, 지자체의 이미지도 추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논란이 일면 시설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실익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지역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연예인을 내세울 때는 여러 위험 요인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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