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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삼성후자’ 거쳐야 삼성 반도체 CEO 된다?… JY 시대 인사 공식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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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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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이끌 구원투수로 전영현 부회장이 등판한 가운데, JY(이재용 회장) 시대 반도체 수장은 전자 계열사에서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뒤 임명되는 것이 인사(人事) 공식처럼 굳어지고 있다. 삼성 안팎에서는 반도체 일변도에서 벗어나 사업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힐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급변하는 사업 흐름을 놓쳐 부작용이 크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1일부터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을 맡은 전 부회장은 2017년부터 5년간 삼성SDI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17년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D램 개발실장, 메모리사업부장을 거친 뒤 삼성SDI 최고경영자(CEO)로 이동한 것이다. 전 부회장의 전임자인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전 DS부문장)도 26년간 메모리사업부에 몸담았다가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기 직전 2년간 삼성전기 CEO를 지냈다. 그에 앞서 김기남 고문(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또한 2013년 삼성디스플레이 CEO를 맡은 이후 반도체 수장 자리에 올랐다.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으로 전자 계열사를 이끌게 된 이들은 모두 계열사에서 경영 성과를 내고 반도체 CEO로 영전했다. 전 부회장이 CEO로 부임한 후 삼성SDI는 적자 늪에서 벗어났고, 약점으로 꼽히던 중대형 배터리 사업에서도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경 사장은 삼성전기에서 시장 개화 단계였던 전장용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 사업을 성장시키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김 고문은 삼성디스플레이 출범 초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개발에 집중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삼성 임원 출신 한 인사는 “1990년대 삼성 반도체 신화를 쓴 진대제(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등용 시절부터 반도체 수장들이 다양한 전자 사업을 경험하는 관례가 있었지만, 최근엔 특히 이런 경향이 더 짙어지고 있다”며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리더들이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해졌고, 회사 입장에서도 개인의 경영 능력을 선제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 ‘윈윈’이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부품 사업은 공정 측면에서 반도체 사업과 유사한 측면이 있고, ‘제품 양산’이라는 업(業)의 개념이 관통해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전자산업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새로운 영역에서 반도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전자 계열사를 거치는 것이 공식으로 굳어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반도체 사업 환경이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다른 계열사를 경영하는 동안 정작 반도체 사업 감각을 놓칠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 반도체 출신 교수는 “계열사에서 경험을 쌓고 반도체 사업에서 시너지를 낸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그간의 전력을 보면 김기남 고문은 당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다. 경계현 사장은 메모리 감산 결정을 늦게 내려 적자 규모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느냐”며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인물이 왜 계열사에 가서 디스플레이나 배터리 사업의 성과를 내야 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반도체 부문 내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인물이 부족해 이러한 관행이 생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정림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가장 이상적인 건 정기 인사를 통해 DS부문 내부에서 최적의 인물을 발탁해 당장 필요한 혁신을 이끌어 가는 것이지만, 현재 삼성 반도체 내부 상황을 보면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응할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없다는 점이 수장 선임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가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만큼 잠재적인 CEO 후보군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삼성 반도체를 이끌어 갈 실력 있는 인물이라면 계열사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적기에 삼성 반도체를 지휘할 수 있는 인사 체계가 갖춰져야 경쟁력이 오를 것”이라며 “DS부문 내 유능한 사업부장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곧바로 DS부문을 이끌 수 있도록 하는 인사 시스템이 공식화된다면 동기부여가 되고 선의의 경쟁이 이뤄지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전병수 기자(outstandi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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